대교연 연구

논평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교수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2.09.30 조회수 :374

지난 94년 하버마스와 96년 앤서니 기든스가 각각 방한했을 때, 한국 학자들이 그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해 물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라 답했다는 엽기(?)적 일화가 있다. 또한 상시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 경제, 북·미 관계 등 우리 민족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일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이 외국학자 특히 미국학자 몫이었다. 우리나라 지식인과 언론이 얼마나 서구 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까. 민주당 설훈 의원이 발간한 정책 자료집「대학교수 10년의 변화」는 이에 대한 답을 해 주고 있다.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2002년 박사학위를 소지한 대학 교원 39,541명 가운데, 외국박사학위를 소지한 교원은 15,783명으로 39.9%이며, 국내박사학위 소지자는 23,758명으로 60.1%였다. 2002년 외국 박사 학위 취득 교원 15,667명 가운데 ⅔(66.3%)에 해당하는 10,386명의 교원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63.3%를 기록했던 92년에 비해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포항공대 교원 중 외국박사학위 보유자는 모두 193명인데, 이 가운데 93.3%인 180명이 미국박사학위 소지자였으며, 서울대도 922명의 외국박사학위 소지자 가운데 79.4%인 732명이 미국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연세대는 627명 가운데 81.0%인 508명, 이화여대는 353명 가운데 80.2%인 283명, 한양대는 482명 가운데 75.7%인 365명이 미국박사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지배적 영향아래 한국 교육체제가 구축되었고, 미국과 우리나라가 특수한 관계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학자들이 자신들에게 학문의 영양분(?)을 공급해 준 외국 학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미래를 물어 본 것이나, 우리 학자들에게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아예 미국의 학자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묻고 있는 언론의 행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문에는 외국의 전례를 그냥 수입해다 쓰려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고, 누가 좀더 새로운 사조를 수입해다 파는가 하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 대학정책이 거의 절대적으로 미국을 모방하고 있는 것도 정부 당국자들이 무슨 위원회를 만들어 교육정책을 입안할 때, 이들을 우선적으로 참여시키기 때문이다.

 

정책자료집에서는 또한 2002년 우리나라 전체 대학 교원의 출신 대학(학부)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가 압도적인 숫자와 비율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 출신 교원은 전체 교원 46,909명 가운데 12,756명으로 27.2%를 차지해, 우리나라 대학 교원 3.7명 가운데 1명은 서울대 출신인 셈이었다. 교원의 출신 대학(학부)별 현황 가운데 상위 10위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경북대, 한양대, 부산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전남대, 경희대 순이었고, 이들 상위 10개 대학 출신 교원은 전체 교원 수 대비 63.5%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대학이 163곳이나 되는 상황에서 대학 교원을 10개 대학이 절반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수임용과 대학운영에서 파벌주의와 연고주의, 패권주의라는 교수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왜 발생되었는지 확인시켜 주는 좋은 근거라 할 것이다.

 

대학별 본교 출신 현황을 보면, 예상대로 서울대가 95.5%로 전국에서 최고를 기록했으며, 연세대가 80.2%, 가톨릭대 69.9%, 조선대 68.2%, 고려대 67.8%, 경북대 58.8%, 전남대 50.0%, 부산대 48.5%, 한양대 47.9%, 이화여대 45.4% 순이었다.

 

정책자료집은 우리나라 교수 사회가 ▶서울대 출신과 미국 유학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서울대를 정점으로 몇몇 대학이 철저한 독점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교수사회의 이동성이 거의 없고, 독점을 바탕으로 ‘동종교배’ 등을 통해 연고주의와 패권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학은 철저히 소외되는 구조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처지와 실정에 맞는 우리 학문이 불가능하며,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교수들은 누구도 자유롭게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제 해방 60년을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 대학은 학문적 식민주의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 학문의 ‘자주독립’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일까?

 

2002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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