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연 연구

논평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대학에 민주주의를 ‘허’하라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2.09.21 조회수 :592

서강대가 방송인 김제동씨의 무료 토크콘서트 개최를 불허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강대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사를 학내에서 열 수 없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콘서트 개최를 불허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인터넷과 SNS상에서는 서강대를 비난하는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일부 언론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서강대 출신이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대학 내 학생자치활동을 규제하는 서강대

 

언론보도의 정치적 해석 여부를 떠나, 과거 민주화 투쟁의 본거지였던 우리나라 대학이 일개 방송인 토크콘서트조차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불허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아울러 대학의 일 주체인 학생들이 자치활동의 일환으로 독자 기획한 행사가 대학 당국의 ‘불허’ 결정에 따라 개최되지 못하는 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서강대는 과연 어떤 근거로 이런 방침을 정했을까? 총학생회와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강대는 학칙을 근거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서강대 학칙 제88조(학생활동의 제한)는 “학생은 수업, 연구 등 학교의 기본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개인 또는 집단적 행위와 교육목적에 위배되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얼마 전 교내에서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문화행사를 개최하려던 KAIST 학생들도 비슷한 사유로 대학으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았다. 학생들의 강행으로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전기 사용 불허로 학생들은 발전차를 동원했다) 됐지만, 대학 당국은 이미 '학교에서 허가하지 않은 행사를 진행할 경우 추후 학칙에 따른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어 학생들의 징계가 우려되기도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학칙’

 

서강대와 KAIST는 이른바 ‘명문대학’이다. 이들 대학조차 학생자치 활동이 대학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다른 대학들은 어떤 상황일까? 물론 상당수 대학은 서강대와 달리 김제동 토크콘서트를 ‘허가’해 행사를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김제동 토크콘서트를 ‘허가’한 대학들도 대학당국의 입장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말도 안되는 학칙 조항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0월 현재, 전국 4년제 198개 국‧공‧사립대학(일반, 산업, 교육) 학칙 및 학생 관련 규정을 분석한 결과, 학생들의 집회 사전 승인(81.8%-162교), 간행물 사전 승인(92.4%-183교), 게시물․광고 사전 승인(80.3% - 159교) 등의 조항을 대다수 대학이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아래 표 참조) 심지어 어떤 대학은 복장 불량, 과도한 화장, 과도한 노출, 허가 없는 방송 출연, 서명운동, 불미한 이성관계, 허가 받지 않은 영상물 소지 및 상영 등도 모두 징계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표> 2010년 현재 학칙에 학도호국단 독소조항 유지 대학 현황

 

유신정권 당시 학도호국단학칙

유사내용

해당

대학 수

비율(%)

(조직승인)학도호국단에 소속되지 아니한 학생단체를 조직하고자 할 때에는 학도호국단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교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학생단체조직 시 사전승인

118

59.6

(금지활동)학생은 학내외를 막론하고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또는 기타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집단적행위 ·성토 ·시위 ·통성·등교거부·마이크사용 등 으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여하한 행위도 할 수 없다.

정당, 정치적목적의 사회단체가입불가

67

33.8

집단적행위·농성등

정치활동금지

108

54.5

(추가)학교운영 관여 불가

22

11.1

(지도)①학생은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②학(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지도하되 특히 학칙 위반자에 대하여 특별지도를 해야 하며, 개별 상담에 응하고 그 문제해결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 해야 한다. 학도호국단의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게 하기 위하여 지도위원회를 둔다.

학생지도를 목적으로 설치하는 위원회

143

72.2

(사전승인)학생단체 또는 학생이 다음에 열거한 행위를 하고자 할 때에는 총장 또는 학(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가'항의 집회에 있어서는 목적, 개최일시, 장소 및 참가예정인원 등에 대하여 승인을 받아야한다.

가. 교내외 10명 이상의 집회

나. 교내외 광고, 인쇄물의 첨부 또는 배부

다. 각 기관 또는 개인에 대한 학생활동후원 요청 또는 시상의뢰

라. 외부인사의 학내초청

집회 사전 승인

162

81.8

게시물, 광고 등 사전 승인

159

80.3

기관 또는 개인에 대한

학생활동 후원요청 또는

시상의뢰 사전승인

102

51.5

외부인사학내초청시

사전승인

110

55.6

(간행물) ① 학생단체가 정기·부정기의 간행물을 발간하고자 할 때 또는 인쇄된 간행물을 배포하고자 할 때에는 지도교수(지도위원)의 동의와 소속대학(원)장의 추천으로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②간행물의 발간 및 편집에 관하여는 총장 또는 학(원)장이 위촉한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간행물 간행시 지도교수 지도,

배포 전 사전 학장 승인

183

92.4

(징계) 조직승인, 금지활동, 간행물 규정을 위반하여 징계 제명된 자(타교에서 제명된 자를 포함한다)는 재입학 또는 편입학할 수 없다.

징계 제적된 자는

재·편입학(타학교 징계자 포함)불가

118

59.6

※ 자료 : 국회의원 안민석, ‘대학 학칙은 아직도 유신시대’, 2010년 10월 보도자료

 

 

 박정희정권의 ‘유신’과 대학 학칙의 관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 연구소는 10년 전인 2002년 6월 10일 이와 관련한 논단<‘유신’ 잔재와 대학 ‘민주주의’>를 발표한 바 있어, 지금부터 당시 논단을 일부 수정 인용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유신시대에 만들어진 학생자치활동과 관련된 학칙 조항이 지금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정권은 자신의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유신을 선포한 후 ‘유신철폐’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차단하고자 1975년 5월 말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자치활동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모든 기구 운영과 정책 결정이 당시 문교부 지시를 받는 대학 당국의 의사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박정희정권이 몰락하고 등장한 전두환정권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밀려 학원자율화조치를 취했고, 1985년 학생들의 학생회 부활 움직임에 학도호국단을 폐지시켰다.

 

대신 당시 문교부는 학생회 부활의 전제 조건으로 ‘문교부 5원칙’을 제시했다.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지도위원회 설치 △학생회비 집행의 감독 △학생대표자의 자격 제한 △학생대표의 교수회의 참석 금지 등의 조항을 학생회칙에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문교부는 또한 ‘학생자치기구 운영 지침’을 내리고, ‘각급 회장 자격기준’으로 ‘학도호국단 운영 규정’이었던 △품행이 방정하고 지휘통솔능력이 있는 자 △원칙적으로 성적 평균이 ‘B’학점 이상인 자 △징계 또는 유급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 △출석 상황이 양호한 자 △입후보 당시 4학년생이 아닌 자로 한정시켰다.

 

'유신' 학칙 조항 유지되는 한 언제든지 자치권 탄압 가능

 

많은 대학에서 벌어지는 학생자치권 탄압 논란은 대부분 △학사 운영에 학생 참여 여부 △학내 학생자치 활동 허용 여부 △간부인정 여부 등에서 기인한다. 대학 당국은 ‘학생은 학교운영에 관여할 수 없으며, 학내 학생활동은 철저하게 학교 당국의 통제 안에서 하라’는 것이다. 대학을 사유화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관철하는 수단이 바로 학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전문대학은 더 심하다)의 학칙은 앞서 설명한대로 군사정권이 학원 통제를 위해 30~40년 전에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상당수 대학이 지금까지 이들 조항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대학 당국의 입장에 따라 학생자치활동 여부는 언제든지 제한될 수 있다. 대학 당국이 평상시에는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다가 특정 시기나 사안에 대해 다시 들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학생의 집단적 행위·시위·농성·등교거부·마이크 사용 등으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 금지 △학생들의 모든 학내 집회, 광고·인쇄물 부착, 정기·부정기 간행물 학교장 승인 △매 학년도 학생지도 계획 수립과 지도교수 임명 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으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해 놓았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대학의 학칙 독소 조항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학 민주주의 다시 고민하는 계기 돼야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에도 이 문제는 계속 제기되었으나,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2012년 1월 20일까지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보고된 학칙 중에 법령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으나, 이명박정부는 대학 자율을 명분으로 이 조항을 삭제했다.

 

따라서 위헌적 요소가 있고, 유신 잔재가 서린 학칙 조항을 대학 당국이 자율적으로 삭제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이를 없앨 방법이 없는 상태다. 서강대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대학 학칙 문제를 비롯한 학생자치활동 더 나아가 대학 민주주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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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가 방송인 김제동씨의 토크콘서트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불허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미지=서강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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