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연 연구

논평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유신’ 잔재와 대학 ‘민주주의’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2.06.10 조회수 :675

우리나라 대학은 군사정권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학생 자치권 탄압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육의 시장화 저지와 공공성 쟁취를 위한 학생연대’(‘교육학생연대’)는 지난 4일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학생자치권탄압 저지와 학생징계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결성식을 가졌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대를 비롯해 동신대, 숙명여대, 강남대, 대구교대, 한양여대, 동강대, 상지영서대, 삼육대, 신흥대 등에서 총장실 점거에서부터 학내 대자보 부착을 이유로 학생징계나 자치권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 한다.

 

대학에서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유신시대에 만들어진 학생자치활동과 관련된 학칙 조항이 지금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벌어지는 학생자치권 탄압 논란은 대부분 △학사 운영에 학생 참여 여부 △학내 학생자치 활동 허용 여부 △간부인정 여부 등에서 기인한다.

 

대학 당국은 “학생은 학교운영에 관여할 수 없으며, 학내 학생활동은 철저하게 학교 당국의 통제 안에서 하라”는 것이다. 대학을 사유화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며, 이를 관철하는 수단이 바로 학칙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전문대학)의 학칙은 군사정권이 학원 통제를 위해 20~30년 전에 만들었던 내용들이다.


25251E3E5663ADA203ABB7

 전두환은 박정희정권의 '학도호국단 운영 규정'의 '각급 회장 자격기준'을 각 대학에 ‘학생자치기구 운영 지침’으로 내려보냈다.

(이미지 출처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교육' 제14호, 1985년 3월, 144~145쪽 재편집)
 

83년 학원자율화 조치가 이루어지고, 84년 서울대를 시발로 총학생회가 부활하며, 85년 학도호국단이 폐지되었다. 당시 문교부는 학생회 부활의 전제 조건으로 ‘문교부 5원칙’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학생회칙에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지도위원회 설치 △학생회비 집행의 감독 △학생대표자의 자격 제한 △학생대표의 교수회의 참석 금지 등의 조항을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교부는 또한 ‘학생자치기구 운영 지침’을 내리고, ‘각급 회장 자격기준’으로 ‘학도호국단 운영 규정’이었던 △품행이 방정하고 지휘통솔능력이 있는 자 △원칙적으로 성적 평균이 ‘B’학점 이상인 자 △징계 또는 유급을 받은 사실이 없는 자 △출석 상황이 양호한 자 △입후보 당시 4학년생이 아닌 자로 한정시켰다.

 

문제는 극히 일부 대학에서 삭제되거나 사문화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에는 지금까지 이들 내용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사문화 된 내용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조항이 △학생의 집단적 행위·시위·농성·등교거부·마이크 사용 등으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 금지 △학생들의 모든 학내 집회, 광고·인쇄물 부착, 정기·부정기 간행물 학교장 승인 △매 학년도 학생지도 계획 수립과 지도교수 임명 등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으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해 놓았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대학의 학칙 독소 조항은 명백히 헌법을 위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권력의 분산과 힘의 균형을 통한 상호견제라 할 수 있다. 대학 민주주의는 행정·재정 및 인사를 비롯한 학교 운영 전반에 법인 및 학교당국 뿐만 아니라 대학 구성원들도 참여하여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합리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 민주주의 실현은 공공성과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간의 신뢰를 쌓고 학교 발전을 위해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부정·비리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예방될 수 있으며, 학교에서 발생하는 여타의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보고된 학칙 중에 법령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위헌적 요소가 있고, 유신 잔재가 서린 학칙 조항을 시급히 삭제하는 조치를 취해, 대학에서 터무니없는 학생자치권 탄압이 사라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2년 6월 10일>


이름
비밀번호
captcha
 자동등록방지 숫자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