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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문제, 몇 가지 제도 개선으로 끝낼 일 아니다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1.04.26 조회수 :575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카이스트(KAIST) 문제가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대학당국, 교수, 학생들로 혁신비상위원회(혁신위)가 구성되어 카이스트 학사 운영의 전반의 개선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혁신위는 △징벌적 등록금제 △영어수업 △재수강 제한 등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언론들은 서남표 총장 부임 이후 카이스트가 세계 대학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며 제도를 일부 개선하더라도 경쟁시스템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이스트 학생들도 징벌적 등록금과 영어 수업 등은 반대하지만 서남표 총장의 퇴진까지는 바라지 않는 눈치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서남표 총장이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반응들이 뒷받침 됐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혁신위는 기존의 서남표식 ‘개혁’ 방향을 유지하되, 몇 가지 제도 개선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느끼는 압박 정도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선에서 개선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정도 처방으로 현재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는 카이스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제도 개선만으론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사태가 모두 서남표 총장의 경쟁 정책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서남표식 학사운영이 대학 구성원 전체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서남표식 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무한 경쟁과 양적 팽창이라는 우리나라 대다수 대학이 갖고 있는 핵심 문제와 동일하다.

 

서남표식 경쟁의 핵심은 경쟁에서 이긴 학생은 ‘승자’가 되고, 낙오한 학생은 ‘패자’가 되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구조이다. 이런 구분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기관에서 가능한 것인가? 이런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학생들이 서남표 총장의 바람처럼 ‘미래 사회 지도자’가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이들의 눈에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더욱이 우리나라는 교육을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 카이스트 교육에서 인격 도야,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의 자질 배양 등과 같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서 총장은 또한 조사 내용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논란이 많은 세계 대학 평가 순위만을 바라보고 대학 운영의 모든 것을 여기에 쏟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 평가 결과도 결국 교육 및 연구활동의 결과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지 순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런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대학이 과연 있을까? 천박함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서 총장이 지향하고 있는 대학 규모 확장도 문제다. 서 총장 취임 이후 학생 수와 설치 학과 수는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그 결과 대학 정원은 서 총장이 모델로 삼은 MIT를 넘어섰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규모가 커진 상태에서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고, 학사 관리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징벌적 등록금제’가 생기고, 학생들이 목숨을 끊어도 대학 당국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서 총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업에 나태해 생기는 세금 낭비를 용납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강조한다. 만약 카이스트가 설립 당시 취지대로 소수 정예를 추구한다면, 현재 예산 규모인 3,500억 원 내외의 국민 세금으로도 충분히 수준 높은 교육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총장은 종합사립대학인 MIT를 모델로 지속적인 팽창 정책을 추구하면서 정부의 예산 지원 확대를 요구해 왔다. 실제 카이스트 졸업생 상당수가 전공과 직접적 관련 없는 곳에 취업을 하고 있어 사회적 비판도 일부 존재한다. 이럴거면 일반 국립대학 공대에 예산 지원을 더 하는 것이 낫지 왜 카이스트에 예산을 더 지원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어교육도 그렇다. 서 총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어 옹호론자들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대학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찬반 입장을 떠나 이들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미국 유학파 학자 비율이 높다. 모르긴 몰라도 영어에 관한 한 어느 나라 학자들보다도 수준이 높은 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서 총장이나 보수언론이 그토록 부르짖는 노벨상 수상자가 왜 우리나라에는 한명도 없을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지도 않은 일본 대학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이유를 뭐라 설명할 것인가?

 

결국 카이스트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기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 승자만이 인정받고 독식하는 사회, 패배자는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거나 목숨을 내놓는 사회, 인간을 육성해야하는 대학이 우리말과 정신을 버리고, 공동체 교육이 아닌 오직 자본의 이익과 성공하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기가 막힌 사회.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서 개선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아니 나아가서도 안된다. 카이스트 혁신위가 서남표식 학사 운영 방향을 유지하면서 일부 제도 개선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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