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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8.03.23 조회수 :819
‘소득나눔 학자금’이 부채 형태의 학자금조달 방식을 개선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득나눔 학자금은 능력 따라 갚는 학자금 대출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특정액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일정기간동안 소득의 일정비율을 대출금으로 갚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해말 ‘2018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소득나눔 학자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상반기 연구용역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처럼 학자금 제도 개선에 나선 이유는 청년층의 높은 학자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학자금 대출과 관련된 신용대출이 2016년 평균 417만원에서 2017년 3월말 기준 741만원으로 급증했다. 현행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은 의무상환 소득이 발생하면 65세까지 상환을 해야 하고, 일반학자금 대출은 소득이 있든 없든 대학 졸업 3년(군 복무 기간 제외) 후부터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상환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신용유의자가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 부담으로 전가된다.
그렇다면 정부가 개선 방식으로 내놓은 ‘소득나눔 학자금’은 어떤 제도이고, 이것이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의 문제점을 뛰어넘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알아보자.
‘소득나눔 학자금’은 번 만큼 갚는 방식
‘소득나눔 학자금’은 학자금 제도가 가진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이 제도를 국내에 처음 제안한 김형태 김앤장 법률사무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래소득의 일정 부분을 일정 기간에 자금공급자와 나누는 조건으로 학자금(등록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라 설명한다.
즉 정부, 한국장학재단, 대학 등이 교육관련 공적기금이나 펀드(자금 공급자)를 만들고, 학생들은 약정을 하고 대출을 받는다. 이 때 기준 소득을 정해 미래 소득이 일정액 이상이면 일정 기간 일정 비율을 나누고, 소득이 일정액 이하면 나누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연간 소득이 1600만원 이상이면 모두 3%씩 내야 한다. 소득이 2000만원이면 60만원을, 소득이 5000만원이면 150만원을 일정기간(예를 들면 25년) 내는 식이다.
빌렸던 학자금보다 더 큰 금액을 갚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기부 개념으로 상환을 하는 것이다. 고소득자일수록 내는 금액은 커진다. 기금이나 펀드에서 학자금을 제공하고, 약정에 따라 소득의 일부분을 상환하는 것이기에 전통적인 부채를 말하는 원금이나 이자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상환’이 아니라 ‘나눔’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자금으로 65세 또는 다 갚을 때까지 ‘빚 부담’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생각한다면 ‘번’ 만큼 갚는 형태의 ‘소득나눔 학자금’은 매우 신선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현행 ‘취업 후 상환 학자금’은 상환기준 소득을 초과할 경우 65세까지 그 동안 축적된 이자와 함께 기준소득 초과분의 20%를 상환해야 한다. 반면 ‘소득나눔 학자금’ 제도는 일정 소득에 이르지 못하면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4인가족 최저생계비도 못버는 청년취직자 70%
‘소득나눔 학자금’ 제도는 일정 소득에 이르지 않으면 상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저소득자의 경우 현행 ‘취업후 상환 학자금’ 제도보다 실익이 더 클 전망이다. 그런데 ‘소득나눔 학자금’ 제도가 저소득자에게 보탬이 되고, 현행 학자금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미래 고소득이 기대되는 학생이 많이 참여해 빌린 돈보다 많은 금액을 상환함으로써 빌린 돈보다 적게 상환하는 학생에게 ‘나눔’을 제공하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즉,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미래 고소득이 보장된 학생의 참여 정도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고소득이 보장된 학생이 많이 참여할 수 있을까. 학자금대출 현황을 통해 살펴보자.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취업 후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청년은 2015년 당시 28.4% 뿐이었다. 연소득이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1856만원(2015년 기준)을 넘어야 원리금 자동 상환이 되는데 연봉이 이에 못미치는 청년취직자가 10명 중 7명이 넘는다는 의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이후 청년실업‧저임금이라는 사회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공부했지만 ‘고소득’을 보장받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럼 현재 누가 얼마나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저소득층의 학자금 대출은 늘고 고소득층의 대출은 줄어드는 추세다. 학자금 대출 추이를 보면 저소득층인 소득1분위 학생의 학자금 대출은 2010년 1학기 444억원에서 2014년 1학기엔 2192억원으로 5배 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득 9분위 학생의 학자금 대출은 1883억원에서 524억원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2014년 1학기 현재 고소득에 해당하는 소득 9‧10분위 대출액은 전체 대출액의 10%인 1093억원인 반면, 기초수급자부터 소득2분위 대출액은 42%인 4446억원이었다.
종합하면, 학자금 대출은 저소득층에 몰리고 있는데 절반 이상은 최저임금 수준을 받고 있어 대출금 갚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소득자의 참여가 활발하지 않다면 ‘소득나눔 학자금’ 제도는 결국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공적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소득자가 대출한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상환한다해도 저소득층의 대출액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공적자금의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미래에 고소득이 예상되는 학생은 아예 이 프로그램에 참여를 안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의대에 진학할 예정인 학생인데 부모도 의사라면 굳이 학자금 대출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 학생의 70%는 고소득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소득층 자녀의 소위 명문대 진학률은 저소득층의 9배에 달했고, 부모 소득 높으면 자녀도 좋은 직장 얻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소득층 가정 자녀가 고소득층이 되는 비율은 24.7%였고 저소득층 가정 자녀가 고소득층에 합류하는 비율은 14.7%였다.
미국도 시행 초기단계...검증된 제도로 보기 어려워
‘소득나눔 학자금’은 학자금 대출이 경제위기를 불러올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에서 처음 제기됐다. 그러나 미국도 시행 초기단계이므로 검증된 학자금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이 제도를 제안한 미국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와 토드 영(Todd Young) 이 제안한 대학생 미래성공 투자법(Investing in Student Success Act)은 현재 상원금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미국 내에서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오레곤 주는 2013년 대학에 다닐 때는 아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나중에 졸업 후 직장을 갖게 되면 그 소득의 3%를 정부, 구체적으로는 정부보유의 교육지원펀드에 지불하는 학자금방식을 담은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당시 주정부는 씨드머니로 90억 달러(달러당 1100원시 약 1조원)를 조성해야 했다. ‘소득나눔 학자금’이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제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타인에게 베풀고 나중에 갚기 (Pay it forward, pay it back)로 요약되는 미국의 '소득나눔 장학금'이
'지금 사고 나중에 갚아라(Buy now, pay later)'라는 상술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출처: tuition.io
미국 퍼듀대는 2016년 9월 이 제도를 도입했다. 호응이 좋아 3~4학년을 대상으로 시행하다가 최근 2학년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퍼듀대에서 이 제도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퍼듀대의 특수성이 있다. 퍼듀대는 공학과 농학이 유명하며,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공과대학을 갖고 있다. U.S. News and World Report에서 미국 공과대학 순위 8위를 기록했다. 2013년에 부여된 퍼듀대 학위의 60% 이상이 비즈니스, 건강과학 또는 과학/기술/수학/엔지니어링(STEM) 분야였다. 소위 고소득 전문직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학교다. 다른 대학에 비해 ‘소득나눔 학자금’이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소득나눔 학자금'은 대안 안돼...등록금 인하가 더 효과적
학자금 대출은 청년취업난과 겹쳐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우리나라 학자금대출은 채권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변동에 따른 이자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학자금대출을 세금으로 충당해 무이자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와 같이 학자금제도가 교육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의 대안으로 ‘소득나눔 학자금’을 도입한다면 미래 고소득이 상대적으로 보장되는 의대, 법대, 경영학 등 특정 분야와 세칭 명문대 일부에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령 이들 분야와 대학에서 이 제도를 도입 한다해도 대출금 이상의 상환을 감수하는 고소득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아울러 이들의 상환은 사실상 ‘기부’ 행위가 되는데,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주요 대학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관련 학과를 제외한 분야에는 ‘소득나눔 학자금’ 도입에 따른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한다면 굳이 ‘소득나눔 학자금’에 투입할 필요가 있을까. 이럴 예산이 있으면 차라리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을 늘려 실질 등록금을 인하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다.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팩트체크 전문 사이트 뉴스톱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