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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4.03.23 조회수 :642
대학들이 재정을 늘리는 주요 방안 중 하나가 기부금을 모으는 것이다. 대학에 따라 방식과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오늘도 대학들은 더 많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마도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모교로부터 받아보게 되는 게 ‘발전기금’ 모금 용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립대학 기부금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전체 기부금 액수가 너무 적고, 그것도 특정 대학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립대 기부금(연구기부금 제외)을 살펴보면, 2000년 1,937억 원에서 2012년 3,761억 원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으나 수입총액과 비교해 보면 1.6%에 불과하다(일반대, 교비·산학협력단회계 기준). 2012년 경희대 기부금수입도 102억 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최근 10여 년 간 전국 사립대학 기부금이 크게 늘지 않고 3,700~4,000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어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부금 규모가 작은 상태에서 그마저 일부 대학에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2012년 3,761억 원의 기부금 중 상위 10개 대학의 기부금은 1,921억 원으로 무려 51.1%에 달한다. 이들 대학은 주로 수도권 대규모 대학들로, 경희대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대학이 기부금을 독식함에 따라 대다수 대학은 더 기부금에 목마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학들이 기부금 확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기부 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않아 대학들이 기부금을 모으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경기 불황이 겹치고, 사회 양극화로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져 기부를 하겠다고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소액 다수가 대부분인 개인 기부자와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기부금을 낼 수 있는 기업들의 소극적인 모습도 대학 기부금 확대의 걸림돌이다. 기부 주체별 현황을 살펴보면, 2012년 기부금 3,761억 원 중 기업 기부금은 3분의 1 정도인 1,319억 원이다. 개인 기부금이 1,092억 원인 것과 비교하면 기업의 역할은 미미해 보인다. 물론 개인 기부도 중요하지만 대학교육의 대표적 수혜자이고, 자금력이 있는 기업의 기부가 늘지 않는다면 대학 기부금 확대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립대학이 보여주는 모습 역시 기부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연일 사학 부정·비리가 언론을 장식하고, 부실한 교육에 실망하는 게 대학 생활의 필수 코스 같고, 작은 정보 하나조차 공개를 꺼리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대학 당국의 모습까지. 모교에 대한 자긍심은 고사하고 비싼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졸업하는 게 다반사인 상황에서 대학에 기부하겠다는 마음이 생길 리 만무하다.
기부금이 늘어나면 대학 재정이 확대돼 교육 여건을 개선할 수 있고,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어디에서도 기부금으로 부족한 대학 재정을 해결하는 나라는 없다. 기부금이 많은 미국 대학도 민간 재원보다 공적 재원 비중이 높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대학 재정을 민간에 의존해 운영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등록금이 오르는 것이고, 대학들은 한정된 민간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부금 모금에 과도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여기에 학벌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얹혀져, 개인이나 기업들이 특정대학에 기부금을 몰아주면서 대학 기부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물론 기부금의 대학 편중은 기부 주체의 의사가 일차적이기 때문에 대학을 탓할 수만은 없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편중 문제는 전체 대학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들은 대학 재정을 확대하겠다며 교직원이나 학부모, 동문들에게 발전기금을 요구하고, 정부도 세제 혜택을 거론하며 기부금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일차적으로 정부 재정 지원 확대를 기반으로 민간 지원을 보조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게 순리다.
이와 별개로 대학들 역시 기부금 확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학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더 나아가 국민들과의 소통을 늘려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동문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기꺼이 대학에 기부에 나서지 않겠는가.
<이 글은 경희대 '대학주보'에 기고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