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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4.01.27 조회수 :1,961
삼성이 전국 200여 대학 총장들에게 신입사원 5천 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 이후 파문이 일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성균관대(115명), 서울대·한양대(110명), 연세대·고려대·경북대(각100명) 등 대학마다 차등을 둬 추천 인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 서열화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책정한 인원에 따라 새로운 대학 서열이 생겨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파문이 일자 삼성은 ‘최근 몇 년 동안의 대학별 입사자 수, 대학 규모 등을 고려’해 배정했고, ‘지역 차별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삼성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파문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2014년 1월 15일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개편, ‘찾아가는 열린채용’을 도입하면서 대학별로 할당 인원을 부여해
총장에게 추천권을 주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이미지=삼성블로그 갈무리)
사교육시장 형성에 따른 사회적 부담 오히려 커질 것
우선 삼성은 이번 조치가 “삼성 입사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이를 줄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삼성은 대학 총장이 추천한 학생들에게 서류전형만 면제해 줄 뿐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나 면접을 통과해야 합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총장은 어떤 학생들을 추천할까? 삼성은 해당 학생의 △인생관·가치관·리더십·의지력 등 △타의 모범이 되는 대학생활상 △회사와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유 등을 추천서에 기재토록 했다. 그러면서도 ‘SSAT 탈락자가 많으면 최종 합격자 또한 줄어 다음 해 할당인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총장은 삼성이 추천을 요구하는 학생의 가능성 보다는 SSAT 통과 가능성을 우선 볼 수밖에 없고, SSAT 통과 여부를 판단하는 또 다른 시험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성이 말하는 사교육시장 형성에 따른 사회적 부담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대학 권위 땅에 떨어뜨리는 오만함의 극치
둘째, 삼성의 이번 조치는 대학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오만함의 극치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시장주의가 확산되고, 학생들의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대학의 권위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일개 기업이 대학 전체를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세계적 토픽감이라 할만하다.
총장 추천 학생이 최종 면접 대상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서류 전형을 면제시켜 준다는 것은 결국 대학 총장이 서류 전형 지원자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해달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총장을 필두로 대학 조직 전체가 삼성의 서류전형 업무 대행업체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어떤 기업이 대학 총장에게 인재 추천을 요청하게 되면 아쉬운 쪽은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은 학생 취업난과 취업률 등에 따른 대학 평가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해 전국 대학 총장들에게 ‘자필 서명’ 해 인재를 추천하라고 일방 통보했다. 어느 대학도 반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삼성의 오만함은 대학 총장들이 자초한 것
삼성이 이런 오만함을 보인데는 대학 총장들의 역할도 한몫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삼성이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개편하면서 대학 총장들에게 추천권을 부여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미 SNS 등에서는 우려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삼성그룹 「채용제도 개편방안」 적극 환영’이라는 성명을 내고, “인재를 시험이 아니라 대학 추천에 의해 채용하는 이번 제도 개선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대학의 명예를 걸고 추천할 것”이며, “삼성그룹의 선도적인 변화가 우리나라 산업계 전면으로 확대될 것을 기대한다”는 낯 뜨거운 입장을 발표했다.
물론 학생 취업난과 취업률 등에 따른 대학 평가에 압박 받는 총장들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일개 기업의 인사 제도 개편안이 언론에 보도된 지 하루 만에 전국 대학 총장들의 대표하는 기관에서 이런 성명을 낸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이 매긴 서열,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에도 영향 미칠 것
삼성의 이번 조치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의 정원 감축과 퇴출 중심의 대학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부는 이미 27일이나 28일 대학구조조정 방안 발표를 예고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이 대학에 추천을 통보한 인원이 모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이른바 삼성식 서열에 따른 1~200등 대학 순위가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교육부가 발표할 정원 감축과 퇴출 대상 대학이, 삼성이 줄 세운 하위 대학과 다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민들이 과연 누구의 발표에 더 신뢰를 보낼까?
어쩌면 그 어느 곳보다 대학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해야 하는 교육부가 삼성의 대학별 추천 인원을 확인하려고 애가 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켜봐야겠으나, 교육부가 과연 삼성이 발표한 서열과 다르게 구조조정 대상 대학을 발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면 재검토 또는 폐지해야
대학 총장에게 인재 추천을 요구한 삼성의 이번 조치는 전면 재검토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 이 조치가 계속될 경우 위에서 지적한 문제점뿐만 아니라 대학과 학생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삼성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삼성이 그려놓은 촘촘한 그물망에서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삼성이 국내에서 더 나아가 세계에서 아무리 중요한 위치에 있다하더라도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그들만의 기준으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대학 전체를 통제하게 둬서는 안된다. 그들 내부의 문제로 그쳐야할 신입사원 채용이 대학교육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학 총장이 서류 전형을 담당하는 삼성의 직원으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과 기업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상호 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