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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24.01.29 조회수 :1,361
정부의 대학 ‘무전공제’ 도입 방침 논란이 거세다. ‘무전공제(전공자율선택제)’는 1학년 때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후,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무전공 입학 일정 비율’ 충족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대학혁신을 위해서는 학과‧전공 간 벽을 허물고 학생들의 전공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침에 대학 교수들은 물론이고 상당수 언론에서도 우려와 걱정을 쏟아냈다. 교육부는 ‘준비도와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주호 장관이 언론 브리핑에서 무전공제 추진 방안과 관련 “물러서는 일은 없다”, “목표는 흔들림 없다”며 강한 어조로 말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이 2023년 12월 27일(수),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확정 발표하고 있다.(이미지=교육부 누리집)
이주호 장관이 쏘아 올린 대학 ‘무전공제’
대학 무전공제 도입 방침은 윤석열정부 두 번째 교육부 수장인 이주호 장관 취임 이후 본격화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학과 벽을 터 주는 등) 새로운 변화를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9일 ‘2023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했고, 29일 수정안을 재공고하면서, ‘전공·학과 등 구분없는 모집’과, ‘지역사회 수요 등을 고려한 학과계열 등 개편’, '학생의 실질적 전공 선택권 보장', '전공의 벽을 넘는 융합교육 운영' 등을 포함한 '교육혁신 전략'을 중요 평가 지표로 제시했다.
또한 3월 16일 지방대 핵심 정책인 「글로컬대학 30」추진방안(시안)을 통해 ‘대학의 대도약 해외 사례’로 ‘학문·학과 간의 벽 허물기로 학생 중심의 전공 체계로 전면 개편’을 제시하면서 “학부생 전원을 무(無)학과 단일계열로 선발”하고, “학생(수요자) 중심의 전공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학과별 정원 폐지”를 예시로 들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10월 “대학 입학 정원의 30% 정도”를 무전공 선발해야 한다고 밝힌 후, 올해 1월 교육부가 2025학년도부터 수도권 대학은 20%, 국립대는 25%를 무전공으로 선발해야 수천억 원에 달하는 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국립대육성사업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안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이 장관은 이 과정에서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3학년이 되면 의과대학으로의 진학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가 대통령실의 질책을 듣고 철회하기도 했다.
철저한 시장주의자 이주호 장관
이주호 장관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자율과 경쟁에 기반한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김영삼정부 교육개혁안 수립에서부터 이명박정부 교과부장관을 역임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증명했다.
이 장관이 “전공과 영역 간의 벽은 교수들의 기득권”이라며,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대학을 시장으로 보고, 소비자 선택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학 무전공 선발도 결국은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하려는 것이다. 학과 간 경쟁을 통해 이른바 소비자인 학생들의 선택받는 전공만 살아남고, 선택 받지 못한 전공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장관은 “현 정부가 ‘산업일꾼 양성’을 위해 교육을 도구화한다는 비판도 있다”는 언론의 지적에 “오히려 산업을 강조하는 교육이 암기나 지식보다 훨씬 더 인성을 강조한다. 과거처럼 달달 외우는 교육으로는 산업이 다 망할 수밖에 없어서다. 산업을 강조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교육이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학들 울며겨자먹기로 무전공제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
2024년 대학혁신지원 사업비 총액은 8,852억 원으로 재정지원사업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 중 절반 가량이 성과를 평가해 인센티브로 지원될 예정이다. 교육부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 대학들이 당장 내년도부터 무전공 입학정원을 확대하지 않아도 올해 국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주호 장관의 입장이 확고한 이상 학생 수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대학 입장에서는 결국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무전공제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23년 신입생 충원 현황을 살펴본 결과, ‘자유(자율)전공’으로 모집한 인원은 6천 5백여 명이다. 인문계열, 자연계열과 같은 ‘계열’ 단위로 모집(4천 3백여 명)하거나,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과 같이 ‘단과대학’ 단위로 모집(7천 5백여 명)하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최소 71개 대학에서 1만 8천여 명을 무전공제로 모집했다. 전체 모집인원의 6%에 해당한다.1)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 방안대로라면 무전공제 모집을 2023년의 4배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무전공 입학으로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몰리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예전처럼 성적과 학과 정원 등으로 조율하지 않고 학생 선택을 반영해 주는 것을 핵심 목표로 정했다고 한다. 기존의 일부 무전공 모집이 학과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성적순 등으로 배분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학생 선택권 보장과 학과 벽 허물기로까지 나가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육부가 원하는 무전공제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완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교육 및 연구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 학생들이 몰리는 전공은 강의실을 재배치하고, 교수진도 더 채용해야 하며, 교육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반면,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문사철이나 순수과학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사라지고, 관련 교수들도 직을 잃게 된다.
과거 학부제의 추억
무전공제 도입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과거 학부제 사례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김영삼정부는 5·31교육개혁안에 따라 ‘학생들의 전공선택권 보장’과 ‘복합학문 취득’, ‘외국대학의 우수한 선진제도’라는 지금과 똑같은 논리로 학부제를 도입했다. 이후 1998년 2월 제정된 「고등교육법 시행령」에서는 학생을 모집할 때, 복수의 학과 또는 학부별로 모집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에 따라 각 대학에서는 1학년 때 무전공으로 모집한 후, 2~3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 ‘학부제’를 전면 도입했다.
하지만 탐색 과정을 거쳐 다양하고 특성화된 전공을 선택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학생들은 취업이 잘 되는 인기학과 중심으로 전공을 선택했다. 비인기학과가 폐과되는 상황이 잦았고, 인기학과는 학생들이 몰려 교육여건이 후퇴했다. 전공 교육은 부실화되고, 대학 구성원들은 학부제 폐단을 호소했다. 결국 2009년 법령을 개정함으로써 정부 주도의 학부제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참고 [대교연 논평] 학부제 실패, 공개 평가 진행해야(2009.06.10.) |
지금 교육부가 추진하는 무전공제는 과거 학부제처럼 계열·학부 등 광역단위로 모집해 그 범위 안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선택사항이고, 아예 모집 단위 구분 없이 모집한 뒤 대학 내 모든 전공(보건의료 등 일부 제외) 가운데 선택하는 방안이 필수사항이어서 과거 학부제에서 나타난 문제가 보다 심각해질 것이 뻔하다.
또한 2009년에는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자유(자율)전공학부’가 전격 도입됐다. 당시 로스쿨을 운영하는 대학은 학부 법학과를 폐지해야 했는데, 폐지하는 법학과를 대신해 자유전공학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은 인기 있는 과로 진학하거나 로스쿨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융합 학문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는 달성하지 못했다. 결국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자유전공학부는 폐지됐다.2)
선택적 모순 행태 보이는 이주호 장관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교육부 폐지를 주장했을 만큼 대표적인 관치철폐자다. 그는 언론 기고를 통해 “(교육부가) 정성적 평가와 연계한 재정 지원 사업을 확대하면서, 대학은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 더 의존하고 교육부의 통제를 더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한 보고서 작성과 평가 준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교육부의 대학 단위 지원은 과감하게 축소하는 대신 학생과 교수” 지원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이주호 장관은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무기로 대학 신입생 모집 단위까지 개입하고 있다. 관치 철폐도 자신이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주장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과거 학부제가 한창이던 시절 본인이 집필한 논문에서 대학의 “모집단위 광역화는 오히려 고등학교 교육을 획일화․표준화로 유도하고 있으므로, (교과목 선택 수업이 핵심인) 제7차 교육과정과 맞물려 모집단위를 학과나 전공별 모집으로 환원”3)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등학교는 당시 상황에서 더 나아가 2025년부터 학점제가 도입되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대학에 무전공제를 강요하고 있다. ‘고교 4학년’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데도 말이다.
재정지원을 무기로 한 무전공제, 성공할 수 없어
교육부 주도로 성급하게 추진되는 무전공제로 인해 학내 구조조정이 심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2025학년도 대입전형계획은 지난해 4월 말에 공표됐는데, 이마저도 대폭 수정해야 한다. 각 대학에서는 대학혁신지원사업 마지막 해인 올해, 이미 수립한 자율혁신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할 판국이다.
대학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정부가 재정지원을 무기로 양적 규모를 제시하고, 대학이 울며겨자먹기로 추진하는 무전공제로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 성공할 수 없다. 정부 주도의 ‘무전공제 인센티브’ 정책은 선회가 아닌, 폐기되어야 한다,
참고로 2008~2009년 대학 학부제 폐지 여부가 논의되고 결정될 때 이주호 장관은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과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을 역임했었다.
1)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2023년 신입생 충원 현황(학과별) 자료를 바탕으로 함(국‧공‧사립 일반, 산업, 교육대학 기준). ‘자유전공, 자율전공, 단과대학, 계열’ 단위로 모집하는 정원 내 인원을 기준으로 했으므로 실제 무전공제 모집은 더 많을 수 있음을 밝힘.
2) 서혜림, '무전공' 확대한다지만…15년 전에도 경쟁적 도입했다 실패, 「연합뉴스」, 2024.1.15.
3) 이주호 외, ‘대학개혁의 청사진: 제2단계의 개혁’, 『자율화 책무의 대학개혁 : 제2단계의 개혁』,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04, 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