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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1.03.14 조회수 :733
일부 주요 대학에 최고급 시설을 갖춘 민자 기숙사와 고급 커피 전문점 및 식당 등이 진출해 있다. 처음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이용을 망설이던 흐름에서 벗어나 고급 기숙사는 입주하려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커피 전문점이나 식당 등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상업화를 무기로 학내에 진출하려는 자본에 적극 반대했던 대학이 이제는 최첨단 서비스와 시설로 무장한 자본의 진출을 적극 반기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대학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반기거나 ‘가격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데 뭐가 문제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학들이 초호화시설을 신축하거나 개축하고, 민간자본을 이용해 고급시설들을 입주시키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이 지경이 되도록 대학을 돈벌이 공간으로 만든 일차적 책임은 대학 당국에 있지만 별다른 문제 의식이 없이 시설을 이용하는 학생들한테는 문제가 없을까? 어차피 선택의 문제이니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곰곰이 한번 따져보자.
일부 대학 당국자들과 학자들은 ‘등록금이 비싸다고 생각하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대학 진학이 필수가 된 사회에서 등록금 액수는 더 이상 고려사항이 아닌 상황에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모두 안다. 그렇다면 수년간 생활해야 할 대학 내에 호화시설을 만들어 놓고 ‘경제적 수준이 안되면 이용하지 말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물론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돈 없는 학생들은 대학 생활도 ‘분수’에 맞게 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좁은 대학 배움터에서 먹고 마시고, 자는 공간마저 학생들의 경제력에 따라 이용에 차별을 받는다면 대학은 더 이상 ‘배우고 익힌다’는 ‘학문의 전당’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경제력에 의해 생활이 규정되는 공간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익힐 것인가? 무한 경쟁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 ‘황금만능주의’와 ‘승자독식’이 판을 치는 공간에서 진리, 정의, 자유, 공동체라는 대학 정신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학들이 문학, 사학, 철학과 같은 순수학문들을 폐과시키고 등록금을 올려 수천억 원의 이월적립금을 남기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이미 대학이 상업화의 첨단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당국에만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도 ‘돈’이 되는 학문을 하고, 남는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 대학이 그렇듯이 교수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행태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대학 복지시설 상업화 문제는 단순히 대학 내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 내부와 경쟁해야 하는 대학 주변 가게들 역시 고급 취향에 길들여진 학생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고급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하숙비 및 자취집 가격 상승도 전세 대란의 영향이 가장 컸겠지만 하숙비보다 비싸진 민자 기숙사를 구하지 못해 외부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의 수요 급증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원래 대학에 기숙사와 구내식당, 매점 및 자판기 등과 같은 학생 복지시설을 설치하도록 법령에 규정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은 학생들이 경제적 상황에 구애 없이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던 것이 대학이 상업화되고, 학생들이 여기에 적응하면서 경제력에 따른 차별이 당연시 되고 있다.
더 이상 대학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대학은 ‘혼자서 진수성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라면에 김치를 먹더라도 여럿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학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수백 또는 수천억 원의 등록금을 적립금으로 쌓느니 차라리 민자 기숙사가 아닌 대학에서 직접 기숙사와 복지시설을 설립 운영하거나 생협 등을 활성화시켜 경제력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값싼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학습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