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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22.12.20 조회수 :1,401
교육부는 지난 12월 16일, 대학 ‘규제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대학 설립·운영 규정」에서 규정한 4대 요건(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관련해서 대학 설립 시 적용하는 기준은 기존대로 유지하되, 운영 시 적용하는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 정부 첫 교육부 수장으로 부임한 이주호 장관이 고등교육 첫 주요 정책으로 ‘규제개혁’ 방안을 택한 것이다.
4대 요건 대폭 완화뿐,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추가 조치 없어
학령인구 감소, 온라인수업 확대 등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대학 교육여건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육여건의 어떤 부분을 조정하고, 어떤 부분을 추가할 것인지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안 관련해 정책 연구를 수행한 한국교육개발원은 ‘4대 여건 완화로 인해 교육‧연구 환경이 악화할 수’있으므로 ‘온라인 강의 지원 전문인력 및 강의 보조인력 충원 등 추가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1)고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 ‘규제개혁’ 방안에는 4대 요건 완화 조치만 담겼다. 구체적으로 학생 1인당 ‘교사’ 기준 면적을 인문·사회계열은 현행 12㎡를 유지하되 그 외 계열은 현행 17~20㎡에서 14㎡로 낮췄다. ‘교지’ 기준은 건물 면적에 필요한 토지만 확보하면 돼 사실상 폐지됐다고 볼 수 있다. ‘교원’ 확보 시 겸임·초빙 교원 비율을 현행 1/5에서 1/3로 늘리고, 학과 간 정원 조정 시 교원확보율 요건을 폐지했다, ‘수익용기본재산’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학교법인이 등록금·수강료수입의 2.8% 금액을 대학에 지원하면 확보한 것으로 인정할 방침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갖춰야 할 교육여건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사학 운영자들의 ‘규제 완화’ 요구 전폭 수용한 것
이 같은 4대 요건 대폭 완화 방안은 ‘규제 완화’라는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사학 운영자들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이다. 그동안 사학 운영자들은 수익용기본재산 확보기준 및 소득액 전출 비율 완화, 기준 초과 교육용자산의 수익용 전환2) 등의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지난 8월 개최된 ‘대학설립 운영규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에서는 사학 운영자들의 규제 완화 요구가 더욱 노골화됐다.
기조 강연을 한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사무총장은 대학 운영 방식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기본사항은 법령으로 정하고, 학생정원, 구체적 운영기준‧방식, 평가 등은 대학 간 협의체에 의해 자율적으로 정하고 규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사실상 대학 운영 관련한 구체적인 법령 기준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교육개발원은 학생 1인당 교사 최소 면적을 현행 12㎡(인문사회계열)에서 14㎡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주거기본법」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이 공고하는 최소 주거면적이 2011년에 12㎡에서 14㎡로 상향된 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4) 하지만 대교협측은 ‘인문사회계열 중심 대학은 교사 기준이 증가할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했고5), 정부 방안에는 대교협 요구대로 최소 기준 상향은 제외된 채 타 계열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만 채택됐다. 겸임·초빙 교원 비중도 1/3로 제안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등의 입장이 그대로 채택됐다.6)
‘수익용기본재산 확보 기준 완화’는 사학법인 입장을 전면 대변한 것이다. 2021년 기준 4년제 사립대학 법인 148곳 중에서 수익용기본재산 확보율 법정기준을 준수하는 법인은 44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등록금과 수업료의 2.8%’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준수 법인이 72곳으로 늘어난다. 사립대학 재정에서 법인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4%에 불과함에도, 이를 개선할 여지가 더 없어지게 됐다.
4대 요건 완화, 무분별한 구조조정과 교육여건 후퇴로 이어질 것
최근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인기학과 중심의 학과 구조조정, 대학 통폐합, 학생 모집이 용이한 지역으로 캠퍼스 이전 등 다각도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완화된 4대 요건은 학과 신설, 정원 조정, 위치변경, 통폐합 등 대학 운영 전반에 적용돼 무분별한 구조조정과 교육여건 후퇴로 이어질 것이다.
일례로 최근 이공계열 선호 현상이 더 확대되면서 인문사회계열 정원 일부를 이공계열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이공계열은 교원법정 기준이 인문사회계열보다 엄격해 더 많은 교원을 충원해야한다. 하지만 교원확보율 요건이 폐지되면 교원을 충원하지 않아도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이를 우려해 한국교육개발원도 총 입학정원 범위에서 정원 조정 시 교원확보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교육부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겸임·초빙 교원 비중을 1/3까지 확대한 방안도 대학에서 비용 절감만을 고려해 전임교원 충원을 최소화하는 방책으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 신분이 불안정한 비전임교원이 확대되고, 종국에는 교원과 학생 모두에게 교육‧연구 여건이 퇴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학생 모집을 위해 수도권 가까운 지역 또는 동일 지역에서 도심지로 캠퍼스 위치 변경을 하는 경우에도 완화된 교사, 교지 기준을 적용해 기존보다 교육여건이 열악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유휴’ 자산 늘어, 대학 상업화와 무분별한 자산매각 우려
법정기준 완화로 교사와 교지 상당 부분이 ‘유휴’ 자산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짐에 따라, 대학의 상업화와 자산 매각이 용이해지는 문제도 우려된다.
지난 6월 교육부는 법정 기준을 초과하는 유휴 교육용 기본재산에 대해 교비회계로 보전없이 수익용으로 용도변경 할 수 있도록 했다. 법정 기준을 초과하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처분한 금액의 용도 범위도 확대했다. 유휴 교사시설에 입주 가능한 업종을 사후규제(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교지에 수익용 기본재산 건물도 건축할 수 있게 했다.
대부분 대학은 교사와 교지 법정 기준을 상회한다. 이번 정책에 따라 법정 기준이 완화되면 유휴 교사와 교지는 크게 늘어난다. 재정난이 심화하는 사립대학 입장에서 유휴 자산을 활용한 상업화와 자산매각이 무분별하게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조치는 학생 모집이 어려운 지방대학뿐만 아니라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는 서울 지역대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서울시가 대학 건물 용적률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교육‧연구 명목으로 교사 시설을 신‧증축한 뒤, 기존 교사와 교지를 유휴시설로 간주해 상업화 또는 수익용 자산으로 활용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
‘대학 혁신 지원’을 가장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 중단해야
이주호 장관은 과거, 최소 기준만 충족하면 대학 설립이 가능하게 한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추진했던 정책 책임자 중 한 명이다. 이번에 교육부가 개편을 추진하는 「대학설립·운영규정」이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하면서 제정된 것이다.
당시 설립 기준을 완화해 다양한 대학 설립을 촉진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준칙주의로 인한 대학의 양적 팽창과 부실대학 문제는 발등의 불이 됐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에도 교육부 장‧차관과 교육문화수석을 담당하면서 ‘규제철폐’ 중심의 고등교육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 규제철폐 정책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양질의 교육여건을 갖췄다는 증거가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교육여건 논의는 고등교육 육성 정책과 정부 재정지원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대학 혁신 지원’을 가장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 정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1) 황준성 등,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 자료집, 2022, 48쪽.
2) 사단법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제204차 이사회 겸 2019년도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서류, 2019, 59~62쪽.
3) 황홍규, 대학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 자료집, 2022, 19쪽.
4) 황준성 등,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 자료집, 2022, 39쪽.
5) 백정하,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에 대한 토론,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 자료집, 2022, 55~56쪽.
6) 임광환,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에 대한 토론,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 방향 정책토론회 자료집, 2022, 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