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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9.05.04 조회수 :453
대학가에 삽질 소리가 높아지며 초호화 건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민간자본(민자)을 유치하거나 대학 자체 예산을 투입한 결과다. 건물은 강의실 및 연구실 등의 교사시설을 비롯해 교사와 상업시설이 혼용된 복합관, 기숙사까지 다양하다.
근래 들어 경쟁이 심해지면서 대학 당국은 대외적 이미지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건물 신축에 나서고 학생들도 초호화판 최신식 건물을 사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상당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학 당국의 이러한 행태와 학생들의 사고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우선 민자 유치 문제다. 정부는 대학에 지원을 하지 않은 대신 스스로 살길을 찾으라며 민자 유치를 허용했다. 대학 운영이 어렵다며 죽는 소리를 하던 대학도 자체 예산을 사용하지 않아 ‘손 안대고 코 푸는’ 민자 유치 방식을 선호하고, 학생들 역시 최고급 시설을 선호한다. 이러다 보니 민자 유치 사업의 대표적 시설인 기숙사가 갈수록 초호화판이 되고 있다. 기숙사 내에 헤어숍, 패밀리레스토랑, 택배사무소, 문구점, 독서실, 세탁실, 복사실, 편의점, 체력단련실, 세미나실 등은 기본이고, 출입통제설비, 태양열설비, 옥상조경 등이 설치된 대학도 있다.
본래 대학 기숙사는 지방에서 상경했거나 가난한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공간을 제공했던 지원시설이었다. 그러나 민자 유치로 지어진 대학 기숙사는 ‘없는 사람’은 쳐다보기도 힘들다. 사립대 민자 유치 기숙사 이용료는 2인실 기준으로 6개월 학기당 250만원(식비 포함)을 상회해 과거 기숙사의 학기당 평균 이용료보다 2배 이상 비싸졌고, 대학 주변 신축 하숙집과 비교해도 30% 이상 비싼 상황이다.
학생들이 최고급 시설을 사용하면서 혜택을 받는다 하더라도 민자 유치에 대한 최종 피해자는 결국 학생들이다. 민자 유치는 외부 기업이 자본을 대고 건물을 완성해 일정기간 동안 직접 운영하거나 임대해 투자금을 회수해 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외부 기업의 투자금 회수는 고스란히 학생들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학 당국이 학생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될 지원 시설들을 외부 자본과 결탁해 오히려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이나 적립금을 이용해 초호화 건물을 신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기에는 학생들의 교육여건을 개선해 주는 것으로 좋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건물을 신축한 지 몇 십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현대식 대학 설립 역사가 짧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학을 대표하는 고건축물이 거의 없다. 대학 당국이 전략적 사고 없이 건물 증·개축을 너무 자주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배경에는 학생등록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대학 당국자들의 안일한 사고와 호화 건물 신축 등에 대해 특별한 문제의식이 없는 학생들의 사고가 깔려있다. 물론 교사시설이 부족하거나 낡았으면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개축을 해야겠지만 그 범위와 예산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대학 예산이 부족하고, 특히 교육 및 연구활동에 당장 필요한 교원과 실험실습기자재 및 도서 등이 충분히 확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건물 신축이 필요한 범위를 넘어 과도하게 호화로움을 추구할 경우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대학가에 민자 유치가 확대되고 초호화 건물이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학이 급속히 상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대 아픔을 함께하고, 변화를 선도했던 대학 문화가 이제 자본의 최첨병이 되어 ‘소비’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구성원들의 심각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