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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9.04.03 조회수 :511
지난 3월 23일 서울대는 ‘법인화 방안 연구보고서(초안)’를 공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4월 3일 서울대 기획실장은 “개별 입법을 통해 법인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이 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 서울대에 적합한 대학법인 설립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설명이다.
그러나 서울대의 연구보고서를 아무리 살펴봐도 서울대가 독자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려는 명확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서울대가 밝힌 법인화 추진배경은 법인화가 세계적인 추세이며, 법인화하면 대학자율권이 확대되어 대학운영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고, 획기적으로 재정을 확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간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해 온 정부의 추진배경과 다르지 않다.
물론 현재 국회에 계류된 정부 발의안은「국립대학 재정·회계 법안」으로 법인화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 때문에 서울대가 개별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대정부와 현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고자 했을 때에도 서울대는 늘 ‘독자노선’을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울대 법인화 독자추진은 1970년「국립학교설치령」에서 빠져나와「서울대학교설치령」(대통령령 제4870호)을 제정한 당시부터 몸에 밴 특권의식에 따른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서울대는 1971년 특수법인화를 최초로 제기했는데 당시 이 내용을 담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관부서를 문교부에서 총리실로 옮기고 이사회 구성을 서울대 구성원 외에 행정부와 입법부를 넘어 경제계·법조계·문화계·예술계 인사를 총망라하여 구성할 것과 인사 및 예산 운영에 있어 서울대만의 자율성을 부여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이후 서울대는 같은 맥락에서「서울대학교특별법」제정 등을 줄곧 주장해왔다. 국립대학을 뛰어넘어 ‘왕립대학’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서울대 이기주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서울대 이기주의는 연구보고서에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지원 확대에서도 확인된다. 서울대가 주장한 바와 같이 서울대 예산규모는 세계 주요대학 예산규모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따라서 서울대의 교육의 질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의 요구가 결코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역시 서울대 이기주의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현재 국립대 법인화는 표면상 국립대의 자율권 확대를 내세워 추진되고 있지만 사실상 국립대를 시장의 논리에 맡기고자 하는 정책이다.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고 정부의 지원은 축소하는 것이 국립대 법인화의 기본논리다. 서울대는 이러한 기본논리의 ‘예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립대학의 사정이야 어떻든 서울대만큼은 지원은 지원대로 받고 자율은 자율대로 누리겠다는 주장이다.
정부지원이 그처럼 절실하다면 서울대는 국립대 법인화 자체를 반대해야 하며, 더 나아가 시장주의적 관점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인화 방안을 보면 서울대는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보다 한 발 앞서 대학의 시장화를 유도하고 있다.
우선 서울대는 총장에게 법인이사장, 재경위원회 위원장, 학사위원회 위원장을 모두 겸직케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총장을 직선제가 아닌 총장선출위원회 추천을 통해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기업 CEO마냥 이사회와 총장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과평가시스템을 구축하여 교직원의 채용 및 승진 등의 인사에 유연성을 갖추겠다고 하는데 이는 교직원의 신분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높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병원, 치과병원 회계를 통합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의료사업의 공공성 침해논란마저 야기하고 있다.
그간 서울대 정책이 고등교육 정책 전반에 미친 영향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법인화 방안이 전체 대학의 시장화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스럽다. 서울대는 독자적인 법인화 추진을 중단하고, 스스로 사명으로 밝힌 ‘겨레의 대학’이 되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되짚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