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는 후원회원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순수 민간연구소입니다.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20.09.28 조회수 :2,276
“일부 사학 비리를 일반화해선 안 된다”
「사립학교법」 개정이나 사립대 감사 요구 목소리가 나오거나 사학 비리가 터질 때마다 사학 관계자들과 보수언론이 한결같이 했던 얘기다. 하지만 9월 24일,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및 고려대학교 종합감사’ 결과는 이 같은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지난 7월 공개된 연세대와 홍익대에 이어 고려대 종합감사에서도 학교법인, 교비회계, 입시, 학사 등 전 분야에 걸쳐 38건에 달하는 부정·비리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 사용, 교수 부모 수강, 차별 채용, 입시 부정 등
고려대 종합감사 결과는 지난해 5월 발표된 회계감사 결과에 이어 가히 충격적이다.
우선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한 내용은, 교수들이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한 내역이다. 고려대 교수 13명은 서양음식점으로 위장한 유흥주점에서 2016년 3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221차례 6,700만 원을 결제했다.
또한 자녀 14명이 교수인 부모에게 23개 과목을 수강하고, A+ 12개, A 6개 학점을 받았으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거나 대학본부에 해당 사실을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려대는 자체 조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적발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조사 대상자에서 누락했다가 적발됐다.
고려대 전경(이미지=고려대 누리집 갈무리)
고려대 의료원은 직원 채용 시 입시학원에서 발행한 수능 배치표를 기준으로 출신대학 순위를 매기고, 5개 등급(A~E등급)으로 구분해 채용 점수를 차등부여 했다. ‘출신대학 차별’ 채용은 감사 대상 기간인 2016년 6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14개 직종 94회 채용에 걸쳐 계속됐다. ‘공정’했어야 할 입시도 자의적으로 진행했다. 체육특기자 특별전형 시 1단계 서류평가 선발 인원을 당초 계획과 달리 적용해 1단계에 탈락했어야 할 지원자가 최종 합격했다.
교육부 감사지적 사항도 무시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교육부 회계감사에서 ‘전별금 지급’ 관련 지적을 받았음에도 같은 사항이 적발된 점이다. 고려대는 2019년 1월 18일 교육부로부터 전별금 지급 관련 규정 정비, 상세 내역 예산서 반영 등의 사항을 지적받았다. 하지만 2019년 2월부터 5월까지 구체적 집행 기준 없이 퇴직자 전별금, 보직자 임기만료 등의 명목으로 2천만 원 상당의 상품권과 순금을 구입해 교직원에게 지급했다. 교육부 눈치도 보지 않을 정도로 비리가 일상화한 모양새다.
이 외에도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기 위해 5개월 단위로 분할 채용하는 등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됐다.
부정·비리, ‘일부 사학’ 문제 아냐
지난 7월 발표된 연세대, 홍대 종합감사 결과에서도 교비회계 부당 집행, 법인카드 부적정 사용, 직원 채용 시 학력 차별 등 유사한 지적사항이 적발됐다. 이들 대학은 설립 이래, 교육부 종합감사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매년 수 천억 원의 국민 세금이 지원되고 있음에도 교육부 감사 인력 부족,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 규정 미비 등을 이유로 ‘종합감사’에서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와 국회 등에서 ‘종합감사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지난해 교육부는 설립 이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 16곳을 선정해 감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고려대 감사 결과가 발표되기 하루 전, 고려대 교수의 칼럼이 한 언론에 실렸다. 해당 교수는 교육부 감사를 ‘마구잡이식’이라고 평하며, “감사를 받는 대학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수준의 사립대학들로서 회계의 투명성이나 교육 및 연구의 질에서 일부 족벌 비리사학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 했다.
과연 세계적 수준의 사립대학에서 고려대처럼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 사용, 학력에 따른 차별채용, 원칙에 어긋난 입시, 비정규직 분할 채용 등이 일어나고 있는지 되세겨봐야 한다.
대학 운영의 책임자라던 교수들, 자성 목소리 없어
문제는 감사 이후 대학구성원들의 반응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학생들은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대학 당국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정작 감사에서 지적된 당사자들인 교수들은 아무런 얘기가 없다.
고려대나 연세대 교수들은 전문가로서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언론 등에 다양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자기 대학 감사 결과에 대해 자성 목소리를 내는 교수단체나 개인은 보이지 않는다.
고려대 감사 결과 보도하지 않은 언론
‘사학’의 공공성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비판 받아야 한다. ‘동아일보’는 지난 1월 ‘고려대, 개교후 첫 교육부 종합감사’ 보도를 했으나, 정작 종합감사 결과는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사 사장이 고려대 학교법인 현직 이사장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개교 이래 첫 종합감사라는 중요성에 비춰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동아일보 외에도 10대 일간지 중에서 중앙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는 관련 보도를 지면에서 싣지 않고 인터넷 기사에만 실었다.
사립대 종합감사 지속 필요, 사립학교법 개정과 대학 내 통제 장치 마련해야
고려대 종합감사 결과는 위에서 예를 든 것 외에도 회계 부분 지적사항이 많다. 사립대학은 매년 법인 내․외부 감사가 회계 전반을 감사하고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한 후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고려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2019년 고려대 내․외부 감사보고서에는 학교법인과 수익사업, 대학, 부속병원 감사 결과 지적사항이 한 건도 없다고 나와 있다. 대학 내외부 감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보여주는 셈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교육부의 사립대학 종합감사는 확대, 지속해야 한다. 또한 「사립학교법」 을 개정해 부정·비리를 예방하고, 사학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감사에서 지적된 내용은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막기에 한계가 있다.
결국 대학 내에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대학 내 각종 의사결정기구에 학생 등 다양한 구성원을 참여시키고, 대학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고려대 구성원들 역시 대학평의원회 개최를 요구해야 한다. 이번 감사 결과는 대학 발전계획에 관한 사항, 그밖에 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으로써 학칙 또는 정관으로 정하는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학평의원회 개최 사유가 된다.
이를 통해 대학 당국이 감사 지적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하는지 감시하고, 재발 방지책도 내놓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