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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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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잔여재산 환원 말하기 앞서 실태 파악부터 우선해야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9.10.18 조회수 :664

언론보도에 따르면, 교육부와 더불어민주당, 청와대가 지난 9월 18일 당정청 협의회를 갖고, ‘사립대학의 자발적 퇴로 마련 방안’ 관련해서 논의했다고 한다.1

 

주요 내용은 △학교 청산 후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가 가져갈 수 있게 하고 △정부가 해산인가를 신청한 사립대학에 명예퇴직금·임금체불 해소 금액을 대여해주며(학교법인이 보유한 기본재산 감정 평가액의 50% 이내 범위) △폐교 부지와 시설을 공공시설로 이용 가능하도록 관련 부서와 협의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적용 대상을 해산인가 신청 당시 재학생 충원율 ‘60% 이하’ 또는 ‘70% 이하’ 대학, 적용 기간은 2020∼2024년 5년간, 2020∼2029년 10년간의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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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사립학교법에 따라 학교법인이 해산할 경우 잔여재산을 다른 학교법인이나 교육사업 경영자에게만 귀속할 수 있다. 나머지 재산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학교법인에 출연한 재산을 공공재로 보고, 해산 이후에도 교육 목적에 사용될 수 있게끔 한 장치다. ‘교육기관에 출연한 재산은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영향도 있다. 

 

‘잔여재산 특례’ 관련 요구는 수십 년 전부터 있어 왔다. 한국대학법인(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법인(교육)협의회 등 이사장과 총장 모임, 보수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정부도 이 요구를 수렴해 2001년 ‘전문대학 발전방안’에서 “학생모집 대량 미달사태 등으로 인해 학교법인의 해산사유 발생시 재산출연자에게 한시적으로 출연재산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처음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대학 발전방안’ 발표 이후 이 문제는 지속적인 논란을 거듭한 끝에 입법화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문재인정부가 ‘사학 재산은 공공재’라는 수십년 간 이어진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이런 고민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문 닫을 대학 교·직원 명예퇴직금과 체불 임금 해소를 위해 정부가 비용을 대여해주겠다는 것은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기존 원칙과 합의를 바꾸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치밀한 사전 준비와 조사를 통한 현황 파악과 전망 등을 세우고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실질적 피해 당사자가 될 대학구성원의 의견도 중요하고, 대여금으로 국민 세금이 투입될 것이라면 국민적 설득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정부가 사립대학의 자발적 퇴출 경로를 마련하겠다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얼마나 많은 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을지, 지역적 분포는 어떻게 될지,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 차이는 어떻게 될지, 입학정원은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등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또한 자발적 퇴출 정책 추진에 앞서, 학령인구 감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의 운영 가능한 재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임금 체불 문제가 있는 대학이 어느 정도인지, 부정·비리 문제가 없는지, 법인과 대학의 자구노력으로 회복 가능한지 등을 살펴야 한다. 자진 폐교가 부실 운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사전 실태조사도 필요하다. 얼마 전 우리 연구소가 교육부가 임금체불 대학에 대한 사전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2했던 것도 이런 문제 의식에 기반해서다.

 

그러나 관련 보도만 놓고 보면, 교육부는 ‘재학생 충원율 미달 대학’을 대상으로 ‘잔여재산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다. 교육부 추계에 따르면 적용 대상 대학 수가 87교(전체 대학의 27%)~145교(45%)에 달해 대학 구성원에게 미칠 영향이 막대함에도 말이다. 우리 연구소가 추계한 결과에 따르면 대상 대부분은 지방대라서 지역 사회에 미칠 영향도 크다.

 

이 외에도 자산매각이 어려워지면, 자산매각을 전제로 정부가 교직원 명예퇴직금, 임금체불 몫으로 빌려준 금액을 돌려받기 어렵다. 국민 혈세가 낭비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한 잔여재산을 설립자에게 귀속할 경우, 부실 운영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에게 오히려 특혜를 주는 건 아닌지, 사립대가 자체적으로 산정한 설립자 기본금이 적정한지, 일터를 잃을 교직원과 편입해야 할 학생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산적하다.

 

얼마 전 자진폐교 의사를 밝힌 동부산대는 임금체불 문제를 겪고 있었다. 대구외대, 한중대, 서남대 등은 설립자의 부정·비리가 원인이 돼 폐교에 이르렀다. 부실운영 징후는 학생 미충원뿐만 아니라, 임금체불, 부정·비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가 자발적 퇴출 경로를 열어주겠다면 보다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그래야만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부실운영 대학 처리 문제와, 자산처리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폐교’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불가피한 일로 치부하고, ‘잔여재산 환원’만으로 유인하려 했다간 대학은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만 파기한 채 혼란만 불러올 것이다.



1. 서혜림, 당정청, 부실사립대 자발적 폐교유인.. 일부자산 설립자 귀속 검토, 연합뉴스, 2019.10.14.

2. 대학교육연구소, 교육부, 입금체불 대학 사전조사 나서야, 논평, 201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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