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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9.08.16 조회수 :1,655
교육부가 8월 14일 2021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기본계획(시안)(이하 3주기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6일 발표된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대응 「대학혁신 지원 방안」’의 7대 혁신과제 중 하나인 ‘대학평가 제도 혁신’ 부분이다. 당시 교육부는 “정부가 더 이상 인위적인 감축을 하지 않고 대학의 자체계획에 따라 적정규모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대학이 스스로 진단 참여 여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정책은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정원 조정 정책의 일환으로 2015년 1주기 구조개혁 평가, 2018년 2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 이은 것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2주기와 마찬가지로 진단에서 상위 결과를 받은 대학은 ‘일반재정지원’을 받는다. 지역대학이 불리하지 않게 5개 권역으로 구분해 지원대학을 선정한다. 달라진 점은 대학이 진단에 참여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진단 결과와 정원 감축을 연계하지 않기로 해 정원 감축이 대학 자율에 맡겨진다는 점이다.
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발상
교육부는 ‘대학혁신 지원 방안’에서 “학령인구 급감 등 인구구조 변화”를 대학교육 환경변화의 첫 번째로 꼽았다. 지금의 대학 입학정원(약 50만명)이 유지될 경우 5년 뒤인 2024학년에 입학생이 약 12만명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 정원의 4분의 1가량을 채울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정부 스스로 정원 감축과 기능 개편 등 대학의 적정규모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1
교육부는 8월 14일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시안)'을 발표했다.(이미지=교육부 페이스북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3주기 방안을 통해 정부 의도대로 적정규모를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학 자율 혁신’을 중시한다는 정책방향에 따라 대학 스스로 정원 감축 규모를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2014년에 1주기 정책을 발표하면서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해 2023년까지 16만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힌 정부 목표도 사실상 폐기했다. 학령인구 감소 속도, 현재 대학 정원 규모, 교육의 질 제고 방안 등을 고려한 수정 계획 없이, 오로지 대학 스스로 자체 계획에 따라 적정 규모를 찾아가라는 주문뿐이다. 2년 뒤인 2021년부터 학령인구 급감으로 인해 고등교육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교육부가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원’ 문제를 대학 자율에 맡길 경우, 정부 바람대로 ‘적정 규모’화와 교육의 질 제고가 가능할까. 한번 따져보자. 대학이 생각하는 ‘적정 규모’는 ‘많으면 많을수록’ 이다. 학생 수는 곧 재정 수입의 원천이고, 규모가 크다는 것은 대학서열에서 큰 이점이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 때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정원 감축 정책을 시작했음에도 학부 학생 수가 1만 5천명 이상인 4년제 대학이 30곳으로 6곳 중 1곳에 해당할 만큼 우리나라 대학은 대규모대학이 많다. 교육여건은 전임교원확보율이 75%에 불과할 만큼 열악함에도 말이다.2
학생 선택, 즉 ‘시장’ 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
정책 발표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은 자율적 정원 조정은 ‘시장’ 기능에 달렸다고 밝혔다. 결국 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을 많이 하는 대학은 정원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정원을 줄이게 함으로써 ‘시장’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1주기 때 전체 대학의 85%에 정원 감축을 권고하고, 2주기 때 36%에 권고했던 것에서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이다.
대학 자율에 맡겨진 정원 감축을 보완하기 위해 진단 지표에 재학생, 신입생 충원율 비중을 2주기 10점에서 3주기 20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4년제 대학 기준). 하지만 충원율은 대학 자체적인 노력보다 학령인구, 대학 소재지와 규모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본역량’ 진단 지표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지방대·전문대 보호 내세웠으나 역부족
이렇게 되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미충원 대부분은 지방대와 전문대 몫이 될 것이다.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가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우선으로 학생이 충원되기 때문이다. 정책 발표 뒤 수도권과 지방대·전문대 반응이 엇갈리는 이유다.
교육부는 지역대학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재정지원대학을 선정할 때 90%를 5개 권역별로 뽑고, 충원율, 전임교원확보율, 취업률 만점 기준을 권역별로 달리 하겠다고 밝혔다. 2주기 기본역량 진단에서도 재정지원을 받는 ‘자율개선대학’을 선정할 때 83%를 권역별로 뽑았지만 수도권대학 선정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높았다. 권역별 선정 비율이 7%p 늘어 지역대학 선정 가능성이 높아졌다지만 지역대학 육성 방안에 대한 비전이 없는 상황에서 몇 개 대학에 지원을 늘린다고 지방대 위기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지역 대규모대학 정원 감축 유도할 방안 없어
그렇다면 수도권 대학은 어떻게 될까.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학생 충원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대학들도 등록금에 의존하는 재정구조이기에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려면 등록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등록금을 계속 인상한다는 것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특히 서울지역 ‘대규모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환경에서 ‘사각지대’에 있다. 1주기(13년 대비 18년 정원)에 전국 4년제 대학들이 정원을 평균 8.2% 감축했지만, 상당수 서울지역 대학은 정원을 줄이지 않았다. A등급을 받아 자율감축 대상이기도 했지만, 학령인구가 급감해도 학생 충원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보다 근본 이유다. 그 결과 이들 대학 학부 재학생 수는 2만명 내외로 세계 대학 평가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는 외국 주요 대학 대부분이 5천~1만명 내외인 점과 비교해 공룡화됐다.
하지만 이들 대학이 질 높은 교육여건을 갖추고 이에 맞는 적정 규모로 운영되는지는 다른 문제다. 전임교원확보율을 살펴보면 서울대(110%)를 제외하면, 연세대 76%, 고려대 72%, 성균관대 76%, 한양대 71% 등 대부분 70% 남짓 수준이다(2018년 의학계열 제외, 재학생 기준). 이 상태로는 학벌주의에 기반해 국내에서 ‘명문대학’ 운운하더라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립대 자발적 퇴로 방안, 부실운영 ‘먹튀’ 부추길 수 있어
결국 3주기를 거치며 우리대학은 서울지역 대학은 지금과 같은 규모를 유지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게 되고, 지방대학은 정원을 감축하든지 감축하지 않더라도 학생 충원이 어려워 대학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로 갈 것이다. 지방대가 정부지원을 받더라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인식된다면, 학생 선택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 중소규모대학 중심으로 학교 운영이 불가능해 폐교하는 대학이 늘어날 것임은 자명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사립대학의 자발적 퇴로’ 마련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즉, 폐교하고 해산하는 학교법인에 잔여재산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정비리, 부실 운영 등의 책임이 있는 사학 운영자들이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폐교한 뒤 잔여재산을 챙겨가는 ‘먹튀’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이미 폐교한 대학 중에 부정비리를 덮기 위해 ‘자진폐교’ 했다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다. 결국 피해는 일터를 잃는 교수·직원에게, 배움터를 잃는 학생에게, 생활 터전을 잃는 지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3주기 방안 폐기하고 새로운 대안 내놓아야
우리대학이 놓인 현실은 엄혹하다. 교육부가 3주기 방안을 발표하면서 제시한 학령인구 추계는 2030년까지다.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만18세 인구가 2030년 46만 5천여명에서 2040년 28만 4천여명으로 급감해 정원 문제는 향후에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2018년 입학정원 기준으로 수도권은 약 19만명, 지방 국공립대는 6.3만여명이다. 여기에 과학기술원, 경찰대학, 폴리텍대학 등 입학정원 1.2만명을 합하면 26만명이 넘는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2040년 18세 인구는 수도권대학 및 지방 국립대, 특수대학 정원과 맞아떨어진다. 나머지 지방 사립대는 전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학벌주의 강화와 수도권 집중은 끔찍해 질 것이다. 학부가 몰락하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대학원에도 미치게 된다. 고등교육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학령인구 감소에 적극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고등교육 개혁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10년, 20년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 생태가 어떻게 변화될 것이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발표된 3주기 방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이 알아서 정원을 줄이라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는 학령인구가 감소할 경우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과 지방대학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이에 따른 정원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학원 정원 조정과 육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대학 재정 어려움 극복을 위해 고등교육재정을 어떻게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 대학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등이 담겨, 총체적인 고등교육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1. 교육부, 인구구조 변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대학혁신 지원 방안, 1쪽, 2019.8.6.
2. 2018년 4년제 대학, 의학계열 제외, 재학생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