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연 연구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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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제 폐지와 함께 대학정책도 전면 수정돼야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8.05.19 조회수 :688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대학총장간 간담회에서 ‘학부제 폐지’ 의사를 밝힌 후 대학들 논의가 한창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다수 대학이 학과제로의 전환을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학부제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하반기에 본격 시행됐다. 당시 교육부는 대학 학과가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 △학사과정 통합화의 세계적 경향에 역행하고 △고등교육 투자의 비효율을 초래하며 △학과별 교과과정 편성에 따른 경영의 비효율과 △시설ㆍ설비의 중복 투자 △학생 교과목 선택 제한 △학과간 폐쇄성을 초래한다며 학과 통합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95년부터 학부제가 점차 확대되다가 교육부가 97년 11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제정하여 99학년도부터 의무적으로 학부제를 도입하도록 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학부제 도입 당시부터 우리 연구소를 포함한 많은 교육시민단체들은 학부제 정책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추진 중단을 요구했고, 이후에도 계속 문제를 제기([대교연 논평] 학부제 실패에서 교훈 찾아야(030512), [대교연 논평] 강압적 학부제 정책 서둘러 폐기해야(020624))해 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러한 비판 여론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실패가 예고된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갔다.

 

당시 우리 연구소가 비판한 내용의 핵심은 ‘우리나라 대학은 대부분 학과간 유사성이 거의 없는 종합대학 성격을 띄고 있는데다 취업여부에 따른 학문적 선호도 차이가 크고, 교육여건이 낙후되어 학부제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학부제 실시로 인해 교육부가 내걸었던 ‘학생 전공선택권 보장’과 ‘복합학문 취득’ 명분은 사라졌다. 전공선택 자율권은 인기학과 편중으로 연결되어 강의 대규모화, 전공교육 부실화,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했고, 학생들은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려 대학공동체가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낀 상당수 대학은 부분적으로 학과제를 선택하거나 편법적으로 학부제를 운영하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학부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새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 규제 완화 방침과 맞물려 추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박정희정권이 1972년 지금과 거의 유사한 학부 또는 계열별 모집을 시도했다 1985년에 폐지한 바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김영삼정권이 10년 후인 1995년 다시 학부제를 도입했다가 13년만인 2008년 이명박정부가 이를 또다시 폐지한 것이다. 13년이라는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하고, 우리나라 대학 정책이 198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학부제 폐지는 그 자체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 학부제는 학부과정을 전공기초과정으로 설정해 저학년에서 교양위주 과목을 배우고, 2~3학년에서 전공기초를 배운 후 대학원에서 전공심화과정을 밟도록 하는 대학원중심대학체제 도입을 전제로 추진되었다. 현재 법학ㆍ의학ㆍ경영ㆍ같은 전문대학원 제도를 그대로 두고 학과제로 전환할 경우 당초 추진 의도와 전면 배치되는, 즉 학부과정이 4년 전공과정이 되고 전문대학원은 별개 대학원으로 존재하는 이중 구조를 가져오게 된다. 때문에 학부제를 폐지하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학원중심대학 체제 도입 방향의 대학교육정책 전반이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 변경으로 인한 대학 혼란을 막을 수 없다.

 

대학원중심대학 도입을 전제로 학부제 추진 등의 내용을 담았던 김영삼정부 ‘5ㆍ31교육개혁안’ 수립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들이 이명박정부 교육정책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중심대학 도입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학부제를 폐지한 이후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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