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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5.06.26 조회수 :636
대법원은 6월 25일 서울대 등 7개 국·공립대 학생들이 "부당 징수한 기성회비를 돌려달라"며 각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기성회비 징수는 적법하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서울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심과 2심에서 기성회비는 회원이 규약에 근거해서 내는 자율적 회비 성격이므로 의무 징수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고, 각 대학 기성회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을 뒤엎은 대법원 판결은 당혹감을 주고 있다.
‘국립대(國立大)’ 정체성 부정한 판결
국립대는 국민들에게 고등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설립・운영하는 공교육기관으로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국고에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국가 예산이 빈약한 상황에서 정부는 확보된 교육 예산으로 초・중등 교육에 투자하기도 벅찬 실정이었다. 이에 따라 부족한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교수와 학생들의 후생복리를 위해 후원회 성격의 기성회를 발족했고, 국립대는 기성회비를 징수하게 되었다.
대학과 동일하게 기성회비를 징수했던 초・중등의 경우 기성회비를 폐지하고 육성회비로 전환했으나, 이마저도 ‘학부모들의 자진 협찬 형식의 비용’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1997년 서울 등 6대 도시를 마지막으로 전면 폐지되었다. 하지만 국립대학은 1963년 기성회 발족 이후, 지난 3월 13일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기성회비를 징수해 왔다.
대법원은 6월 25일 서울대 등 7개 국·공립대 학생들이 "부당 징수한 기성회비를 돌려달라"며 각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기성회비 징수는 적법하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서울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와 같은 기성회비 성격에 대해 대법원은 “기성회비는 자율협찬금적 성격이 사라지고 모든 학생에게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일률적으로 동일한 수준의 기성회비가 부과되어 국립대학 교육역무와 교육시설을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라고 판시하면서, 고등교육법 제11조의 ‘그 밖의 납부금’을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국립대 교육시설 제공에 대한 대가는 ‘수업료’로 책정・징수된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국립대가 왜 교육시설 제공 대가로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이중징수 해 왔는지 해명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립대 기성회비는 수업료보다 3~4배 비쌌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국립대학 이용에 대한 사용료’ 지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또한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국가가 설립・운영하는 국립대라 하더라도 국가가 재정적 부담 의무를 소홀히 하고, ‘수익자부담 원칙’이라는 명목으로 학교시설 확충 등에 필요한 비용을 수업료 외에 다른 방식으로 충당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국립대가 왜 ‘國立大’인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만드는 판결이다.
‘기성회 회원 가입에 관한 의사합치’가 이루어졌다?
한편 대법원은 “기존의 사단(기성회-연구소 주)에 대한 신규가입은 가입 희망자의 신청과 사단 측의 승낙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나, 신규가입 신청과 승낙의 의사표시는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며 “학생들은 등록금 고지서에 기재된 기성회비를 수업료와 함께 납부했고, 그 과정에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학생들이 수업료와 함께 기성회비를 납부한 것은 암묵적으로 기성회에 가입했다는 징표이고, 회비로서 기성회비를 납부한 것은 적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려는 신입생이나 재학을 앞둔 학생들은 등록금을 납부해야만 등록이 된다. 등록금 고지서가 수업료와 기성회비로 일괄징수 되기 때문에 기성회비는 선택이 아닌, 등록을 위해 강제적으로 납부할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이를 “학생과 학부모가 국립대학의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려는 의사”로 해석하고 기성회 가입과 기성회비 납부가 문제없다고 본 것은 ‘강제적’ 부과를 ‘합법적 절차에 의한 자발적 비용’으로 해석한 것에 다름 아니다.
교육부의 ‘환영’ 입장이 갖는 의미
이번 판결에서 대법관 13명 중에서 6명은 기성회가 그 밖의 납부금 징수 주체가 될 수 없고, 기성회비는 기성회 회원들의 회비이므로 국립대학 이용대가로 납부하는 ‘수업료 그 밖의 납부금’과는 법적 성질이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2010년 이후 5년간 끌어 온 기성회비 법적 소송이 1, 2심에서 ‘불법’ 판결난데 이어 대법원에서도 법리적 다툼이 컸음을 방증한다.
그런데도 교육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히고, “현재 기성회가 가지고 있는 회비 등을 정리해 대학회계로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이 제정되어 기성회비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립대학의 실질적인 설립・운영 주체인 교육부가 한가하게 대법원 판결에 대해 ‘환영’ 입장이나 밝히고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기성회비는 국가가 대학에 교육재원을 충분히 지원하거나 보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자율협찬금 성격이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발전함에 따라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성회비가 처음 징수됐던 당시와 동일하게 국립대 재정 부담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시켜 왔다.
국가 책임성 강화하고, 관련 법 개정해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국공립대학 비중이 낮거나, 등록금에 의존해 국립대학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정부가 추진해 제정 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은 “국립대학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 및 국가 균형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밝혔다. 정부가 이런 취지를 인식하고 있다면 기성회비 판결에 ‘환영’ 입장을 낼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재정 지원을 확대해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1조의 교육받을 권리가 “국가가 교육조건을 개선・정비하고,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며, 이에 대해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판시한 바 있다. 정부가 재정회계법 이후에도 변함없는 입장을 보인다면 국립대학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법 해석상 논란이 되고 있는 고등교육법 상의 ‘그 밖의 납부금’ 조항도 개정해야 한다. 학교 재정 지출요인에 대한 학생 부담 비용이 수업료에 책정되고 있고, 기성회비가 폐지된 상황에서 ‘그 밖의 납부금’으로 이중 징수 근거의 여지를 남겨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