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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07.21 조회수 :1,285
학연과 지연을 통한 교수 채용은 학과 내에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어 내면서 교수 사이에 학문적 긴장 관계를 없애버린다. 한마디로 비판적 거리감 상실은 대학을 편한 계급사회로 만들어 버린다.
특정대학 출신이 어떤 학과를 독점하거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생기는 병폐이다. 이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학문의 동종교배 현상이 일어나고, 학문의 비판정신은 사라지며,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동종교배의 피해자와 희생자가 되어 버리고, 학문의 미래는 암담해질 뿐이다. 그래서 외국학문에의 종속은 심화되고, 국내 학위의 가치는 점점 하락된다.
비리와 직접 관련은 없다하더라도 이번에 교육인적자원부 감사 대상이었던 서울대의 2002년 본교출신 비율이 95.5%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산대 역시 본교출신과 서울대 출신이 75.3%였고, 강원대와 강릉대는 3명 중 1명이 특정대학 출신이었다. 나머지 대학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다. 교수 채용에 학맥과 인맥이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기에 충분한 사례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3월부터 한달 간 서울대, 부산대, 강원대, 강릉대, 부경대 등 10개 국립대를 대상으로 ‘국립대 교원 신규임용 실태’를 감사한 결과, 40건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해 이 가운데 신규 임용자 2명을 임용취소하고, 2명은 중징계토록 했으며, 98명은 경고 및 주의 조치했다고 밝혔다.
감사에서 지적된 사례를 보면, 지원자와 출신대학 선·후배 관계 등 특별 관계인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후배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심사평가 항목의 채점기준을 다르게 채점해 출신학교 후배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등 채용 과정의 기본 원칙까지 무시했다. 또한 교수 정원이 배정되거나 결원이 발생한 경우 제때 채용하지 않거나 정원계획을 무시하고 교수를 충원하는 등 교수 정원 관리 및 채용과정에도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교수임용 비리는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실력이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도 학연이나 지연을 이용하거나 또는 금품 제공 없이 순수하게 응모해서는 ‘교수되기 힘들다’는 말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처럼 되어 버렸다. 지난해 ‘교수신문’이 전임교수직에 지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6.5%가 임용과정에서 금전적인 요구나 발전기금 기부를 요청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공개 답변이 어려운 처지를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교수 임용 과정에서 금품 제공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교수 임용 비리가 국립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모든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국립대는 그나마 일정 주기에 따라 교육인적자원부의 감사를 받는 반면 사립대학은 감사의 ‘해방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국립대학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립대학은 피해자 본인이 폭로하기 전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조차 않는다.
교수 임용 비리가 그치지 않은 이유는 부실한 법·제도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교수 채용에 외부 인사나 학내 구성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고, 당사자가 요구가 없을 때에는 관련 서류조차 공개하지 않게 되어 있다. 특히 사립대학은 법인 이사장에게 교원 임면 권한이 전적으로 부여됨으로써 대학이 자율적으로 신규 교원을 채용할 수 없는 구조다. 학맥과 인맥에 의해 자기사람을 뽑으려는 교수들의 안일한 생각도 교수 임용 비리를 근절시키지 못하는 한 이유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는 교수 임용 비리를 막을 수 없다. 우선 특정 과정에만 참여시키고 있는 외부인사 참여 범위와 권한을 넓혀야 하고, 대학 구성원의 참여도 보장해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대학원생까지 포함시켜 공개강좌 등을 통해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관련 서류 공개를 의무화하여 당사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채용 과정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특정대학 출신 2/3 초과 금지를 규정한 ‘교원 쿼터제’를 엄격히 적용하고, 그 이행여부를 철저히 점검하는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교수임용의 연고주의, 패권주의를 근절해나가야 한다.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교수 임면 권한을 총장에게 완전히 위임하여 대학이 자율적으로 신규 교수를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수임용 비리를 적발했을 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련 당사자를 강력히 처벌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수 공정임용 없이 학문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 7월 21일자에 실린 박거용 소장님의 원고입니다.
2003년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