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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06.23 조회수 :467
교수임용탈락과 생활고를 비관한 한 대학강사의 죽음을 계기로 비정규직 대학교수(시간강사)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학강사의 죽음을 접한 대학구성원들의 반응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오늘날 시간강사들은 열악한 조건으로 연구 및 교육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해낼 수 없는 것은 물론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강사료로 인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한 시간강사의 예를 들어보자. 시간당 2만원의 강사료를 받는 시간강사가 매주 법정 수업시간인 9시간을 출강한다고 했을 때, 연봉은 567만원(2만원×9시간×16주×2학기). 동일한 시간에 강의하는 전임교원의 연봉 3000만원~6000의 1/5~1/10의 수준이다.
이는 현재 정부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정한 월별 최저생계비 102만원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간강사의 70%이상이 기혼자임을 감안한다면, 시간강사인 가장이 온전히 강사료에 의존하여 가족생계를 책임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 강의라도 더 맡기 위해 먼 지역의 대학출강까지 마다하지 않을 경우, 교통비, 식대비등으로 강사료의 상당부분이 지출되는 것은 물론이요,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누적되어 보다나은 교육 및 연구활동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 대학도서관에서 책 한권 제대로 빌릴 수 없고, 강사대기실조차 없어 변변한 휴식조차 취할 수 없는 현실 또한 시간강사의 교육 및 연구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강사는 현재 약 5만여명. 이들은 학부 교양과목의 54.1%, 전공과목의 29.3%를 맡고 있다. 따라서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지와 조건은 부실한 교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전국의 시간강사들은 ‘일용잡급직 노동자’로 분류되고 있는 법적 지위를 교육법상 ‘교원’ 지위로 변경해줄 것과 시간강사들의 처우개선으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시간강사’는 국가차원에서 보호해야할 주요 학문 후속세대이자, 대학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주체로서의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학력을 소지한 시간강사가 수만 명에 이르고, 이들이 대학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요구이다.
시간강사 문제는 생계보장차원에서 처우부터 시급히 개선되어야한다. 정부당국은 시간강사의 강사료 책정을 대학자율에 내맡길 것이 아니라 최저기준을 명시하여 준수를 강제해고, 각 대학당국들 역시 시간강사 처우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이에 비추어볼 때 몇 년전부터 강의가 없는 방학에도 시간강사에게 연구비를 제공하고, 시간강사 전용 휴게실을 마련한 성공회대 사례는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강사 처우 개선 과정에서 정부나 사학 관계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부족한 강사료를 학생등록금 인상을 통해 해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사학 법인이 강사료 인상분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학생과 학부모는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시간강사 문제 해결의 또다른 방법은 각 대학들이 시간강사의 전임교원 채용 비중을 늘려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일반대학의 법정기준 대비 교원 확보 현황을 보면, 국립대학은 65% 내외이며, 사립대학은 6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들 대학 가운데에는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가 60명을 넘는 대학까지 있으니, 현재 교원확충은 시간강사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결국 시간강사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부 당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 위에 나열한 시간강사 문제 해결 방안은 수년 전부터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정부 당국이 각종 이유를 대면서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시간강사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2003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