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연 연구

논평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우려되는 정원 자율 및 수도권 대학 신설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06.09 조회수 :476

지난 5월 9일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교육부의 정원 사전조정절차 폐지’를 골자로 한 ‘2004학년도 정원 자율조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간 대학으로부터 정원 증원 계획서를 제출 받아 교육부에서 조정하고 그 결과를 각 대학에 통보하던 절차가 폐지되고,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여건의 기준만 충족하면 이제부터 증원이 자유롭다. 대학정원 책정의 자율권이 보다 확대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맥락의 정책이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에서 발표되었다. 건교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내년부터 군사분계선에서 20㎞ 이내에 위치, 발전이 낙후된 접경지역에 인구수나 수요를 고려해 정한 일정 범위 안에서 4년제 대학 신설을 허용할 계획이란다. 파주, 포천, 연천, 동두천, 양주 등 경기도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국민들과 대학구성원들은 어리둥절하다. 증원과 대학설립의 규제를 완화하는 이번 조치는 ‘대학이 지나치게 많아 한정된 정부예산으로 충분히 지원하기 어렵다’며 대학 통·폐합을 호소하던 정부당국의 기존의 입장과 전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설득력도 떨어진다.

 

실제로 2003년 현재 전국 199개 4년제 대학과 156개 전문대학은 신입생 미충원 인원 8만5,000여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대학은 모집정원의 절반도 못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우리 대학은 인력수급계획과 교육여건의 질과 상관없이 공룡처럼 비대해졌다.

 

역대정부가 국고지원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대신 등록금 수입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증원·대학설립 등 대학운영자의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해온 결과이다. 이로 인해 부실사학이 난립하고, 교육여건의 질은 떨어졌으며, 대졸실업자 문제는 더욱 극심해졌다.

 

교육부와 건교부는 이번 조치는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정원자율화는 비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제한하여 교원·교사 확보율 90%이상, 수익용기본재산·교지확보율 55%이상인 교육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지방소재 대학 가운데 이같은 교육여건 기준을 충족하는 대학은 몇이나 될까.

 

이는 형식적 요건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간 교육부는 교육여건과 상관없이 대학의 증원·증과 신청을 허용해왔다. 설사 이것이 지방대학에 한정된 정책이라 할지라도, 일부 지방대학은 특성화와 상관없이 더욱 대학을 대규모화해 나갈 것이며, 정원미달사태를 겪은 대학은 경쟁대학에 신입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수능점수에 상관없이 선착순으로 학생을 모집한다는 어느 전문대학의 ‘묻지마선발’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건교부 또한 대학설립허용은 인구과밀지역인 서울은 제외되며, 오히려 접경지역에 대학이 설립되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항변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건교부의 방침은 통일시대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땅투기를 하려는 사학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서울의 유명 사학이 파주지역에 부지를 매입하려한다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 있으며, 또다른 대학들도 서울 외곽지역의 부지매입을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 정책이 실행되면 이들 접경지역은 규모를 늘리고자 하는 대학의 투자 1순위로 떠올라 대학의 공동화현상과 교육여건의 질적 낙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교의 문제를 재탕하게 될 것이다.

 

정부당국은 대학의 양적 팽창을 유도하여 국고지원의 책임을 은폐하려했던 역대정부의 과오를 더 이상 답습해서는 안된다. 운영이 부실한 대학은 재정지원을 줄이거나, 퇴출·M&A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더더욱 위험하다. 사학청산법을 염두에 둔 사학운영자들은 오히려 내심 퇴출·M&A를 반가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당국은 알아야한다. 이렇게 되면 양적 팽창에 따른 부실운영의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구성원들에게 돌아갈 따름이다.

 

지금은 대학정책을 자율화라는 미명아래 시장논리에 내맡길 때가 아니라 정부당국이 교육의 공공적 책임을 다해야할 때이다. 더 이상의 정원확대와 대학설립을 금지하고, 대학이 특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대학이 규모확장을 통한 대학간 경쟁을 멈추고, 특성화방향을 안정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지금의 차등지원정책을 수정해야한다. 정부당국이 시급히 교육재정을 확보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을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삼는 사학운영자의 행위에 대해서도 정부당국은 엄격히 대응해야할 것이다.

 

2003년 6월 9일


이름
비밀번호
captcha
 자동등록방지 숫자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