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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2.04.28 조회수 :540
최근 언론에 대학간 ‘M&A’와 ‘퇴출’이란 용어가 거침없이 등장하고 있다. ‘대학을 통·폐합하고, 재정 상황이 어려운 일부 대학은 문을 닫게 하자’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올해 전국 4년제 대학의 미충원 인원이 3만5,681명이고, 전문대는 이보다 심해 5만172명에 이르고 있어 ‘대학을 더 이상 지금과 같이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부터 대학 정원 자율화를 요구해 왔고, 지금도 이러한 요구에는 변함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 결과, ‘대학설립을 자유롭게 한다’는 준칙주의가 도입된 97년이래 대학생 수는 40만3,277명이 늘었고, 전문대학은 23만8,388명이 늘어 모두 64만1,665명이 늘어났다.(교육통계연보, 각 연도) 올해 대학과 전문대학 미달 인원보다 7.5배나 많은 인원이다.
한편으로는 설립과 정원 자율화를 주장하며 정원을 늘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학생 수가 미달되니 대학간 통·폐합과 퇴출이 가능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 입학 예정자 수가 감소된다는 사실을 이미 10여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대학 설립과 정원을 자유화한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정원 미달 사태는 결국, 과거 정권과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계 친미 기득권세력, 사학관계자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지난 세월 우리나라 대학을 미국과 같이 자유롭게 설립하고, 매각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대학종합평가인정제’를 비롯한 각종 평가사업, 평가 결과에 따른 차등지원, 민영화를 기반에 둔 ‘국립대학운영에 관한 특별법’, 대학 통·폐합의 전단계로 학과간 통·폐합을 유도한 ‘학부제’, 외국 자본에 대학 매각이 가능하도록 하는 ‘교육개방’, 교수·직원 해고를 손쉽게 만든 ‘계약·연봉제’, 앞서 언급했던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정원자율화’ 등 일련의 교육정책들이 모두 지금의 대학 정원 미달 사태와 관련이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여기에 더해 대학 퇴출이 가능하고, 대학 설립자가 출연금을 회수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사학 청산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의도대로 정책이 추진될 경우 우리나라 대학은 어떠한 모습을 띄게 될까. 먼저, 우리나라 대학은 외국 대학의 먹이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대학 입학 예정자들은 퇴출 가능성을 입학 조건의 하나로 보고, 안전성을 찾아 소위 ‘명문대학’으로 몰리면서 학벌주의와 서열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중등교육이 정상화될 수 없고, 입시 열풍이 가열될 것임은 물론이다. 상황이 지속되면 지방대나 수도권 소규모 대학은 지속적으로 퇴출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을 예로 들면, 일부 사학 운영자들이 고의로 부도를 내고 학교를 매각할 수도 있다. 이들은 그 동안 쌓아놓은 이월·적립금과 대학을 매각한 대금을 챙겨 학교를 떠나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교수·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신입생이 미달이라고 얼마 전 교수들을 집단적으로 나가라 했던 대학의 예에서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
대학 퇴출 자유화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퇴출 대상 대학은 일차적으로 수도권보다는 지방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지역간 교육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지방자치 확대와 더불어 증대될 지방 인재에 대한 수요를 지방대학이 채우지 못하게 되면서 지역간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지방분권’과 전면 배치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분별한 대학 통·폐합 역시 특성화와 관계없이 대규모 대학만 새로 탄생시킬 뿐이다.
학벌주의가 만연하고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율경쟁으로 대학 경쟁력을 찾겠다는 발상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극소수 대학을 제외한 대다수 대학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대 정원 미달 문제는 시장 논리의 최극단인 대학 통·폐합과 퇴출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시장에 내맡겨진 대학 설립과 정원정책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더 이상 대학 설립을 금지하고, 이 기회에 대학 정원을 소수 정예화하여 특성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교육재정 확충이 필수적이다.
일부에서는 재정 확보의 현실성을 말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타령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사립대학들 역시 규모를 줄이고, 특색 있는 대학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인의 재산 운용과 대학 재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대학 운영의 내실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학 구성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장주의’적 구조조정 중단과 수도권소재 대학과 지방소재 대학 모두가 차별 없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대학 시장화’를 위해 지난 몇 년간 정부와 제도 언론이 집중 유포한 ‘부실 대학 난립’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와 포섭에서 대학 구성원 스스로가 벗어나야 가능해진다. 정부 정책의 본질을 꿰뚫고 대학 구성원 스스로가 주체적 입장을 가질 때만이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2003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