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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무현 정부 교육개혁 의지 과연 있는가?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04.14 조회수 :720

- 「교육인적자원부 대통령 업무보고」를 보고

 

9일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교육인적자원부의 첫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노무현정부의 총체적 교육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입각한 교육인적자원부의 새로운 정책 방향들이 나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의 실질적인 교육개혁안이 추후 꾸려질 교육개혁 기구를 통해서 나올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에 발표된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 내용은 매우 참담하고 부실한 것이었다.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은 김대중정부의 교육개혁안을 재탕 삼탕 반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 내용에서도 후퇴한 결과들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이미 국민들로부터 실패했다고 비판받고 있는 정책들을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물론 국민적 비판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여 몇 가지 미봉책을 곁가지로 끼어 넣고는 있으나, 이대로 교육정책이 시행될 경우, 노무현정권 임기 내에 대학은 급격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기본방향부터 잘못 설정 - 시장 논리 맹신

 

교육인적자원부는 ‘참여정부 교육인적자원정책 기본방향’을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실현-전 국민의 인적자원 역량 강화’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방도로 ▲초·중등교육의 공공성 제고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 ▲능력중심사회로의 전환을 내걸고 있다.

 

먼저, 기본 방향으로 ‘전국민의 인적 자원 역량 강화’를 제시한 것부터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면 교육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와 지식을 전수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적자원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교육을 받은 결과의 하나로써 언급될 수는 있어도 교육개혁의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인간과 교육의 궁극적 존재 목적이 자본 창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공성 재고’를 위한 초·중등교육 분야의 세부 목표를 보면, 이미 김대중정부가 시행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열거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김대중정부의 초·중등교육정책이 성공했다고 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배짱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또한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적 수준의 대학 육성 ▲지역혁신을 선도하는 지방대학 육성 ▲대학 교육·연구의 질적 수준 제고와 같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시장경제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경제 논리에 따른 김대중 정권의 교육정책은 경쟁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소수의 혜택과 다수의 소외로 우리 대학의 차별화·서열화를 더욱 공고히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교육인적자원부가 이와 같은 정책 기조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균형과 통합을 강조했던 노무현정부의 국정철학을 무시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등교육 분야의 정책 기조는 3대 목표 가운데 하나인 ‘능력중심사회로의 전환’과도 맞지 않아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 능력중심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학 차별화·서열화 및 학벌 타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가 밝힌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는 필연적으로 ‘학벌중심 사회’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육인적자원부가 사회적 차별 철폐 등과 같은 근본적 대안 없이 ‘능력중심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전문인력 육성’과 ‘여성 및 취약계층의 활용 촉진’ 등과 같은 과제를 제시했는데, 이를 통해 어떻게 능력사회로의 전환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인적자원부 혁신,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안 및 쟁점과제 중 하나로 교육인적자원부 자체 혁신안을 제출하고 있다. 이는 역대정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스스로 “우리 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을 언급할 만큼 국민적 불신이 팽배했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교육인적자원부가 자체 혁신안을 내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가 진정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 주체들로부터 누차 지적되어 온 정책 독점과 교육 현장 및 주체들에 대한 군림과 통제, 특정 인맥과 학맥의 독점과 그에 따른 갈등, 교육계 부정·비리에 대한 소극적 대응 및 방관 등과 같은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형식적 변화는 국민의 불신과 비판을 일시적으로 면하기 위한 정권 초기 면피용 대책이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우려 가운데 하나는 교육인적자원부가 부처간 기능조정을 위해 외부전문기관의 컨설팅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며, 이중삼중의 국고낭비일 뿐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더불어 부처간 기능조정을 위한 컨설팅이 이미 98년에 실시되었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로 전환한 것은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타부서와의 기능조정이 이미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외부 컨설팅을 통해 부처간 기능조정을 하겠다는 것은 교육혁신기구 설치 등으로 위기에 몰린 교육인적자원부가 다른 권한을 새로 갖겠다는 의지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유명무실해질 가능성 큰 ‘교육혁신 기구’

 

업무보고에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혁신과 더불어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와 공감대 형성을 통한 교육문제 해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기구의 조속한 설치’를 건의하고 있지만, 과거 전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번 보고 내용을 근거로 할 때,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대중정부 때도 ‘범국민적 참여를 통한 교육개혁 추진’을 명분으로 ‘(가칭)교육개혁추진중앙협의회’ 발족을 추진했으며, 이후 ‘새교육공동체위원회’(98년 7월)와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00년 9월)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이들 조직은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였다.

 

이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제2의 교육입국 기획단’ 등을 만들어 국민적 의사 수렴과정 없이 교육개혁안을 일방적으로 수립·발표(99년 3월)하고, 기존의 교육계 기득권 세력을 묶어 조직을 구성할 때부터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에 교육인적자원부가 업무보고한 내용을 보면 ‘교육혁신기구’가 또다시 과거의 전철을 밟게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낳게한다. 대학구성원들은 일찍부터 정부의 핵심 고등교육정책인 BK21, 국립대특별회계제도, 사학구조조정 등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러한 여론을 무시한채 정책을 계속 강행할 뜻을 밝힘으로써 ‘교육혁신기구’가 향후 정책 수립·집행과정에서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국특법’ 도입 위한 반대여론 무마용 ‘참여와 자율’?

 

교육개혁을 ‘교육주체의 참여와 자율을 통한 「참여교육」’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의 자율역량 강화와 민주적 의사결정 기구 마련’을 위해 추진한다는 ‘교수회 합법화’, ‘국립대학 총장선출 방식 자율화’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이들 정책의 배경에 ‘국립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법’ 도입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수회 합법화, 총장선출 방식의 자율화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추진하는 의도가 다른 곳에 있는 이상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이번 보고내용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시한 ‘교수회를 법제화하는 한편, 교직원·학생·학부모·지역인사가 대학운영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대학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는 내용이 빠져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참여교육’ 실현이라는 교육인적자원부 방침의 본질은 ‘국특법’ 반대의견을 무마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유인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학 부정·비리,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근본 대책 마련해야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번 보고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사학비리 전담 감사기구’를 설치하여 사학의 부정·비리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부분이다. 전국 대학의 84%, 전문대학의 90%인 사립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교육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립학교법, 행정감사규정 등의 법·제도 정비가 후속 조치로 함께 뒤따라야 할 것이다.

 

‘회계감사를 회계법인 등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고, ‘시민단체 참여 등을 통해 사립대 예산 운용의 투명성’을 기하겠다는 내용은 몇 년전부터 해마다 반복되어온 수사에 불과한 만큼 예·결산 공개 범위와 방법 확대, 미이행시 처벌 조항 강화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강제시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편, 염려스러운 점은 사학 비리·분규 발생시 행·재정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부정·비리가 발생했으면 사법적 조치 등을 통해 당사자에 대한 제재만 하면 되지, 당사자와 아무 관련이 없는 학교에 행·재정 지원 중단을 하겠다는 것은 부정·비리로 시달린 대학구성원들에게 이중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립적 인사를 위원으로 구성하여 분쟁조정·화해 역할을 수행하는「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방안은 재검토돼야 한다. 이 방안은 김대중정부에서 이미 제출된 것인데 ‘사학분쟁위원회’가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게되거나 분쟁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질 가능성이 높아 흐지부지된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사학비리 전담 감사 기구’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사학 문제와 관련해 교육인적자원부 보고에서 아쉬운 것은 대통령직 인수위가 보고한 ‘대학비리 및 부당 해직교수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추후 이 부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현실적이고 전시적인 사교육비 경감 방안

 

우리나라 사교육비 문제는 결국 대학 서열화 문제에서 비롯된다. 대학이 서열화되지 않았다면, 원하는 고등학교 졸업자 대부분이 대학에 들어가는 현실에서 별도의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 교육정책을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차별화·서열화’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서 사교육비를 없애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사교육비 경감 방안으로 ‘인터넷을 통한 「무료 가정학습 및 가정교사 지원체제」’, ‘불법·고액 과외에 대한 학부모·시민단체의 사회적 감시체제 강화’ 등 몇 년 전부터 되풀이해 온 현실성 없는 방안들만 나열식으로 제시하고 있어 교육인적자원부가 사교육비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또한 향후 추진계획으로 ‘정기적·체계적 사교육비 실태조사·분석 후 정책’을 반영하겠다거나, ‘5월 중 사교육비경감대책 연구팀을 구성하고 금년 말까지「사교육비경감대책(장·단기)」수립’하겠다는 대목에선 교육인적자원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밖에도 장기적 사교육비 경감 방안으로 ‘학벌주의 극복과 과도한 대입 경쟁 완화’를 제시하고, 그 구체적 내용으로 ‘과다한 입시경쟁 유발 분야(법·의학)에 대한 전문대학원 도입 확대와 과열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대입제도 발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학벌주의가 ‘학문 분야’보다 ‘대학 간판’에서 더 크게 기인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는 반대 여론이 강했던 ‘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론과 동떨어진 밀어부치기식 BK21 강행

 

교육인적자원부의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 방안은 절대적인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추진되고 있어 고등교육의 심각한 파행이 예상된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를 통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된 ‘BK21’사업과 타당성과 현실성에 문제되어 도입이 유보되었던 ‘전문대학원 제도’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집중과 선택이라는 미명하에 소수 대학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가 ‘BK21’ 사업의 성과로 제시하고 있는 서울대의 세계 대학 순위는 SCI 등재 논문 순위에 지나지 않은데도, 이를 대학 교육·연구의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판단하고 계속 추진하겠다는 발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태에 불과하다.

 

교육개방에 앞장 - 원격교육 개방, 대학간 M&A

 

또한 정부는 국민적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교육개방 양허안’을 제출하면서 현재 법적으로 개방된 수준에서만 개방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번 보고에서 이 약속을 뛰어 넘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포함시키고 있다. ‘교육·연구 수준 향상을 위한 국제화를 추진’하겠다며, ‘Off-line과 On-line 방식을 통한 연계프로그램 운영 활성화’를 내놓은 것이 그것이다.

 

이는 원격교육분야의 개방을 의미한 것으로, 현재 우리 나라에 원격교육 분야 개방에 대한 보완 법령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된 것이 없어 지난달 제출한 1차 양허안에도 제외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원격교육분야의 개방을 추진하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처사이다. 이 외에도 ‘국내·외 전문 컨설팅 기구를 통한 대학자체 경영진단 유도’는 미국의 강력한 개방 요구 사항이며, ‘국내 대학의 대학간 M&A, 대학의 퇴출’도 외국분교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사전정지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수면 위로 떠오른 ‘사립대학 청산법’

 

대학평가제도가 서열구조를 정당화·고착화시키고 더욱 심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이에 대한 개선책 없이 평가제를 계속 강행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학 평가가 강화될 경우 대학 서열화가 더욱 굳어지고 더 나아가 대학 퇴출을 위한 진단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학 퇴출이 기정사실화 된다면 대학교육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하다. 경영이 불가능한 대학에 대하여 퇴출 경로를 마련한다는 것은 곧 ‘사학청산법’ 제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려했던 점이 현실로 떠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학청산법’이 본격화되면 사학운영자들은 청산과정에서 더 많은 사익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며, 사립대학은 이들의 자산을 불리는데 소진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부정·비리로 경쟁력을 잃은 사립대학이 사학운영자의 재산을 불리고 퇴출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 구성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더욱이 대학설립 자율화로 부실 사학의 난립과 퇴출이 반복된다면 대학구성원들은 엄청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 피해는 종국적으로 우리 나라 대학교육 전체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예산 지원만으로 지방대학 살릴 수 없어

 

지방대학 육성은 교육정책의 문제로 국한 될 수 없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국고를 지원한다고 지방대학이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대학 육성은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 분권화’ 추진 과정에서 함께 언급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렇지 않고 교육인적자원부가 독자적으로 지방대에 재정 지원을 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은 물론이고 타 부처와의 혼선도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방대학을 살린다고 내놓은 ‘지역BK21’ 사업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방대 문제는 지방의 일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별이 구조화된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적 문제이다. 때문에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방대 전체에 대한 거시적 육성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지역BK21’ 사업을 통해 일부 대학만을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지방대학간에 또다른 차별을 발생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산업대·전문대 차별 계속 되는가

 

2003년 현재 고등교육기관의 학생 수는 358만여 명이고, 이 가운데 산업대는 15만여 명, 전문대 96만여 명이다. 산업대와 전문대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⅓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 내용에는 이들 대학에 대한 대책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학벌을 철폐하고 능력 중심의 사회로 전환되는데, 산업대와 전문대는 제외된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산업대와 전문대학은 각각 82년과 79년에 설립되었으나, 지난 20여년간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당초 설립 목적도 상실한 채 차별의 또 다른 상징이 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인적자원부가 능력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말하려 한다면, 산업대와 전문대학에 대한 대책도 함께 언급했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내놓은 학벌주의 타파와 능력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 얼마나 허황된 공문구에 불과한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라 할 것이다.

 

‘시장논리’가 아닌 ‘균형과 통합’의 교육개혁 추진되어야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무현대통령은 9일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교육분야 개방과 관련, “중등교육은 국가교육체제로 확실하게 지켜나가되, 대학이후의 고등교육은 세계교육체제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대학의 경쟁력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대학 문을 닫아두고 실제 학생들은 외국으로 나가 비싼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경쟁력 확보방안이냐”고 말했다. 매우 우려스러운 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대학은 실질적인 문만 열지 않았지 교육제도와 형식, 내용까지도 이미 미국식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식 시장 논리에 따라 지난 50년간 고등교육정책이 유지되어 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경쟁력이 없다는 우리 대학의 모습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과 교육개방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 학생들이 외국으로 특히 미국으로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주류사회’와 ‘지식인 사회’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국대학 유학을 하지 않고서는 ‘주류사회’ 진입도 ‘지식인 사회’ 진출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낮은 핵심적 이유는 교육개방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부가 고등교육 분야에 지원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발언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에 우려를 보내는 것은 시장논리를 맹신하고 있는 교육관료들의 사고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형식적 ‘참여 민주주의’만 강조했을 뿐, 김대중정부의 실패한 교육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겠다고 한 것 역시 시장논리 맹신에 따른 결과이다. 과거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면서 새로운 개혁 방향을 제시하길 바랐지만, 온갖 수사와 미사여구로 치장한 채 마지못해 개혁안이라는 걸 제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무현정부가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찌들어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에 교육개혁 작업을 맡겨서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 속히 민주적이고 현장성 있는 인사들을 주축으로 ‘교육개혁 추진 기구’를 구성하여 ‘시장 논리’가 아닌 ‘균형과 통합’에 기반한 교육개혁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 정부에 대한 교육정책 평가나 향후 계획 등도 여기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03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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