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연 연구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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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방 양허안 제출을 규탄한다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03.31 조회수 :426

지난 27일, 정부가 이달 말까지 제출예정인 양허안(개방계획서)에 교육부문을 포함시키기로 하면서 교육·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WTO공투본 및 전교조는 교육개방 양허안 제출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단행하고 청와대 앞에서 철야농성을 진행했다. 전국 대학생 7천여명도 서울 대학로에 모여 교육개방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이번 양허안이 우리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외국 대학설립은 비영리 학교법인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보건·의료 관련 대학과 교대·사범대·방송통신대·원격대학은 제외하며, 수도권 지역 내 학교 설립도 금지키로 하는 등 현행 국내법상 가능한 개방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모든 제한을 그대로 유지해 지금과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분야 양허안 제출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개방의 수준과 정도가 아니라 교육 분야를 협상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데 있다. 미국을 위시해 국내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각국 정부는 추후 진행될 쌍무 또는 다자간 협상에서 우리 나라에 현 수준보다 더 광범위한 개방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개방 폭이 넓어지거나 ‘제한’ 조치가 완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나라는 몇 가지 제한 조치만 풀면 전면적 개방이 가능한 수준이어서 추후 진행될 협상 결과에 따라 대학교육 전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부는 교육개방은 대세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난 2월, 유럽지역 문화·교육장관 회의는 교육·문화·미디어 분야를 서비스시장 협상에서 제외하는 선언을 하였으며, 대다수의 개도국도 교육개방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3월 현재, 우리나라에 교육개방을 요구한 나라는 WTO 145개 회원국 중에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10개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정부 주장과 달리 교육개방 반대 흐름이 전세계적 대세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우리 정부가 교육개방 양허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한 것은 국익의 고려도, 세계적 대세도 제대로 읽지 못한 무지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가 양허안 제출 유보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에서 이를 뒤집고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는 것은 정부 부처간 협조 차원의 문제를 넘어 해당 부처의 존재가치를 완전히 부정한 것이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유관 부처간 협의가 있었다하더라도 해당 부처의 의견이 최우선적으로 반영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문제는 또한 교육문제를 경제부처가 좌우함으로써 노무현정부 역시 교육현장의 시장화를 초래했던 과거 정부의 행태를 반복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미국이 통상압력을 무기로 개방 확대를 요구할 때 교육분야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교육개방 양허안 제출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개적인 국민 의사수렴을 하지 않은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외교상 관례라는 이유로 모든 과정을 비밀에 부쳐 국민은 물론이고 교육개방을 결사 반대했던 교육관련 단체도 진행 과정과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진행될 노무현정부의 교육개혁 과정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정부는 교육개방 양허안 제출과 관련해 교육인적자원부와 재경부,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가 진행한 협의 과정과 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당 부처의 의견이 경제나 통상관련 부처에 의해 완전히 묵살되는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여 추후에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대책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서는 향후 진행될 쌍무 협상 및 다자간 협상에서 우리나라의 주체성과 이익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외국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우를 다시 범하게 될 것이다.

 

주무 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 역시 이번 사태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부처 수장이 부총리로 승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부처와의 협의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으며, 양허안 제출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상황에 따라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2003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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