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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2.08.19 조회수 :443
부산대가 내년부터 등록금 예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부산대학 당국자는 “등록금 수입의 상세한 예측이 가능하게 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대학살림을 꾸릴 수 있게 됐고 학생들도 전체 등록금 규모를 알게 됨으로써 장기적인 학비조달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등록금 예고제 도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등록금 예고제를 도입하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등록금 수준에 따라 대학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등록금 예고제는 ‘학생 모집요강에 4년간 학생들이 지불해야 할 등록금 수준을 예고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대학들에 등록금 예고제 도입을 권장해 왔으며, 소위 영향력이 크다는 언론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지지해 왔다. 이러한 와중에 부산대가 내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나머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언뜻 들으면, 등록금 예고제는 부산대 관계자의 주장처럼 대단히 합리적인 제도로 들린다. 하지만 등록금 예고제는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마냥 좋은 제도가 아니다. 대학 관계자들이야 이익이 되니까 그렇다치고, 외부에서 무턱대고 이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알면서도 눈을 감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등록금 예고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학 당국이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천문학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해도 학생과 학부모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등록금 예고제는 신입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리 등록금이 많아도 입학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으며, 학교 당국과 한번 맺은 계약 때문에 4년간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학 당국이 학생과 학부모들을 우롱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등록금 예고제가 본격 도입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대학에 따라 등록금 인상률과 액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대학 입학증(?)이 가격에 따라 서열화되는 비참한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결국 부모의 소득 정도에 따라 해당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등록금 예고제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주장들을 보면, 4년간의 등록금은 물가인상률과 인건비 인상률, 경제성장률 등에 따라 조정된다는 것인데, 대학이 이러한 지수들을 어떻게 예측한다는 것인가. 물론 대학 당국자들은 정부의 전망을 기준으로 한다고 할 수 있으나, 정부가 발표한 통계의 신뢰성은 IMF 사태로 이미 끝났다. 더욱이 세계 경제는 불안정성이 큰 금융시장의 비중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데, 안정적인 몇 년 후의 수치 전망이 나올 것이라는 인식은 상식 밖이다.
등록금 예고제를 통해 대학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코미디에 가깝다. 단적으로 수조원의 이월·적립금을 남기고 있는 사립대학들이 발전 계획에 따라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립대학들이 예산을 남기는 것은 일단 남기고 보자는 생각 때문이지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다. 명목도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정권이 바뀌고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대학 발전 계획도 바뀐다는 것이 그 증거다.
따라서 등록금 예고제가 시행되어 예산 전망이 보이더라도 거시적인 발전 계획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대학 당국자들은 학생 등록금을 타산한 후 자신들의 역할인 자구노력 즉, 기부금 유치와 법인전입금 확충을 위한 노력을 회피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정부와 대학 당국자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감언이설로 등록금 예고제 도입의 당위성을 말하지만 실제는 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 경우에 따라 격해 질 때도 있고, 이로 인해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록금 예고제 도입과 같은 임시방편을 통해 등록금 인상 과정에 대학 구성원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발상은 더욱 위험하다. 해마다 반복되더라도 대학 당국은 학생들을 상대로 대화하고 설득하면서 대학 발전의 동반자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학생들을 탓하기에 앞서 대학의 열악한 교육·연구여건 개선을 위해 정부와 대학 당국이 무엇을 했는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02년 8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