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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2.06.24 조회수 :632
학부제 문제점을 제기하고 보완을 요구하는 대학 당국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14일 전국 국·공립대 총장들은 “학부제가 대학 교육 부실을 초래하고 있다”며, 학부제의 선택 자율권 확대, 학부제의 재편성 권한 확대, 학과별 모집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4개항의 건의문을 채택했다. 서울대 역시 `두뇌한국(BK) 21` 자금지원 약속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모집단위 광역화로 선발했던 모집단위를 대폭 조정, 세분화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경북대, 연세대, 중앙대, 목원대, 국민대 등 상당수 대학에서 일부 모집단위의 학과제 전환을 확정하거나 고려중이다.
지난 94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추진된 학부제 정책이 시행 10년도 채 안돼 파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 대학의 처지와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외국정책을 모방하여 밀어붙인 정권과 대학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재정지원이라는 당근을 명분으로 학부제를 강행했던 대학 당국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이들은 학부제 추진 당시 ‘학생들의 전공선택권 보장’과 ‘복합학문 취득’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어느 것 하나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대학 교육을 파행으로만 내몰았다. 전공선택의 자율권은 인기학과의 편중으로 연결되어 강의의 대규모화, 기초학문의 몰락을 초래하였고, 학생들은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려 대학공동체가 붕괴되는 위기를 낳았다. 정부당국의 말대로라면 학부제를 도입한지 8년에 이르는 지금, 학문간 통합에 따른 교육 및 연구의 질적 발전과 전공선택의 자율권에 따른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야했다.
학부제의 이러한 문제점은 애초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학은 대부분이 학과간 유사성이 거의 없는 종합대학의 성격을 띄고 있는데다가 취업여부에 따른 학문적 선호도의 차이가 크고, 재정난으로 인해 교육여건이 낙후되어 있어 학부제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은 박정희 정권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입증된 바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지금과 거의 같은 내용의 ‘실험대학안’을 추진하면서 학부 또는 계열별 모집을 시도했으나, 1982년부터 다시 전환되기 시작해, 1985년에 와서는 ‘계열별 학생모집 및 계열별 교육과정 운영’을 완전히 폐지한 바 있다.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문제가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 당국자들이 당시 문제들을 애써 눈감은 채 25년이 지난 이후에 또다시 학부제를 강행하여 오늘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는 학부제 파동을 통해 우리 실정과 다른 외국 제도의 무분별한 도입이 얼마나 위험한지,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무시한 일방적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학부제뿐만 아니라 교육개방, 국립대 운영 특별법 도입, 평가 결과에 따른 차등 지원 정책 확대 등과 같은 정책을 대학 구성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학부제 정책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더 이상 대학이 관료들 몇몇을 위한 실험실로 전락될 수 없는 노릇이며, 대학 구성원들 역시 더 이상 소모적인 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금이라도 학부제 관련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모집단위와 관련한 사항을 대학 자율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나머지 정책들도 강행보다는 차기 정권으로 넘겨 충분한 검토 속에 시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02년 6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