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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4.03.03 조회수 :611
최근 대학가의 최대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삼성총장추천제’다. 삼성은 얼마 전 신입사원 채용시 총장이 추천한 응시자에게 서류전형을 면제해주는 ‘총장추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 줄 세우기 논란에 휩싸이자 이를 철회했다. 삼성은 대학서열, 지역차별 의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된 대학별 인원 할당은 삼성이 대학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어떻게 일개 기업이 전체 대학을 줄 세우는 일이 가능할까. 일차적으로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가는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이다.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도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한다. 일자리의 ‘양(취업률)과 질(정규직)’이라는 측면에서 삼성의 제안은 대학들에게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다.
삼성이 '총장추천제'를 철회했으나, 대학이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화적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이미지=삼성블로그)
극소수 대학과 학생들이 삼성의 방침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거의 모든 대학은 침묵했다. 만약 삼성이 계속 밀고 나갔다면, 실제로 상당수 대학들이 학생을 추천했을지도 모른다. 대학들은 삼성의 ‘총장추천제’가 부당한 행위라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추천 받을 수만 있다면 학생들 역시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삼성은 이 부분을 공략한 것이라 봐야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번 촌극이 해명되지는 않는다. 자본에 의한 대학의 종속 우려는 수많은 논란이 있어 왔지만 주로 교육과 연구 일부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돼 왔다. 그런데 이번 사례는 일개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대학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사회적 지위를 앞세워 오만한 모습을 보인 삼성의 책임이 작지 않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와 대학 스스로의 책임이 더 크다.
그간 대학정책의 핵심은 평가를 통한 차등지원정책이었다. 차별적 재정지원 정책이다. 그 결과 국고보조금은 대학 서열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2012년 전국 152개 사립대학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가운데 상위 10개 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40.4%나 됐다. 특이한 점은 그 순위가 이번에 삼성이 대학별로 할당한 인원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이 차등지원정책의 기준이 되는 대학평가지표는 취업률, 산학협력 등 기업의 협조가 필요한 지표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취업과 산학협력은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여러 지표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책임져야 할 대졸 취업 문제와 여건상 모든 대학이 성과를 낼 수 없는 산학협력 여부가 대학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되면서 대학들은 기업과의 관계에서 명백히 ‘을’의 입장이 돼버렸다.
이제 이런 평가가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재정지원 여부를 넘어 대학의 존폐를 결정짓는 기준으로까지 확대돼 대학들은 사활을 걸고 이러한 평가지표 성과 올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특히 평가 과정에 대기업 인사들이 상당수 참여한다.
대학들은 학과 구조조정 등을 통해 취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학과들을 무차별적으로 밀어내고 있다. 문사철(文史哲)의 순수기초학문은 대학에서 이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삼성과 두산은 더 이상 대학을 신뢰할 수 없다며 직접 대학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대학의 민주주의와 자치활동 논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라며 대기업에 권위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
대학과 대학구성원들의 책임도 크다. 성격은 다르지만 대학은 물질만능주의 최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학은 교육의 질보다는 최신식 건물로 외형 키우기에 집착하고, 비용이 싸서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에게 인기가 많았던 기숙사는 민간자본 유치로 돈 없는 학생은 입주조차 힘든 상황이 됐다. 구내식당과 커피 자판기는 거대 자본이나 각종 프랜차이즈 매장이 접수한 지 오래다. 대학은 내심 기부금 등을 바라면서 필사적으로 대기업을 끌어들이려 하고, 대학구성원들 역시 편리성을 내세워 이런 변화들을 반긴 결과다.
지금처럼 대학과 자본이 종속된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주의가 갈수록 심화되고, 정부가 법·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 구조상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도 크다. 그런 만큼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안은 대학의 본질은 무엇이고, 위상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대학구성원들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 때만 가능하다. 비록 작지만 지금이라도 변화의 몸짓을 시작해야 할 때다.
<이 글은 경희대 '대학주보'에 기고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