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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4.02.21 조회수 :548
며칠 전 서울신문에 “남북 해빙무드… 대학가 ‘통일학’ 훈풍 부나”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숭실대는 ‘평화통일연구소’(가칭)를, 건국대는 대학원에 ‘통일인문학’ 과정을, 경희대는 후마니타스칼리지에 ‘북한의 이해’ 과목을, 성균관대는 대학원에 ‘남북한 관계론 연구론’ 수업을 개설하기로 했다는군요.
대학이 분단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고, 학문적 노력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환영 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시류에 편승한 일회성이거나 원칙 없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면 아니함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1990년대 중반 탈(脫)냉전 분위기를 타고 북한학과 신설이 확산됐습니다. 1994년 동국대를 필두로, 명지대(1995년), 관동대(1996년), 고려대(1997년), 조선대·선문대(1998년) 등이 학부 과정에 북한학과를 신설했지요. 2000년 당시 교육부가 밝힌 '4년제 대학 북한학과 개설현황'에 따르면 대학원에 북한학을 개설한 대학도 8곳이나 됐습니다.
2014년 현재, 전국 대학 가운데 동국대와 고려대만이 북한학과를 유지하고 있다.(이미지=동국대,고려대 북한학과 누리집 갈무리)
2000년 6월 16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숭실대는 평양 및 인근지역에 평양캠퍼스나 분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서울대와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는 각각 김일성대학, 고려성균관대학, 평양외국어대학과 학문 및 교수·학생교류를 추진한다는 계획까지 세운바 있었지요.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대학들의 움직임이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조선대는 신설 1년만인 1999년 북한학과를 폐지했고, 관동대 역시 2006년에 폐지했습니다. 선문대는 2008년 동북아학과로 개편했고, 명지대 역시 2010년 정외과와 통폐합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북한학과는 동국대와 고려대 두 곳밖에 없습니다. 물론 동국대 북한학과도 2011년 구조조정 논란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습니다.
대학들이 북한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 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관동대는 노무현정부 집권 이후 남북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2006년(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북한학과를 폐지했고, 선문대와 명지대는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학과를 폐지했습니다. 대학 평가와 취업률 등이 중시된 사회적 여건도 무시할 수 없었겠으나, 정치적 상황에 따른 남북관계 진전 여부가 학과 존폐에 영향을 미친 것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반면 2014년 현재, 대교협 입시 사이트에서 ‘군사학과’로 검색하면 16개 대학이 나오고, ‘국방’으로 검색해도 10개 대학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20개 학과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신설됐으며, 17개 학과는 2011년 이후에 신설되었습니다. 취업률 등에 따른 대학평가 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과연 이런 학과들 신설이 단순히 취업률 때문 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북한학과와 군사학과는 각기 학문적 특성을 갖고 있어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격을 달리한다고 해서 두 학과를 무턱대고 대척점에 놓고 바라볼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위에서 살펴본 것 같이 대학들이 추진한 학과 신증설이나 통폐합이 분명 정치적 흐름을 타고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대학들의 움직임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이나,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남북고위급회담, 이산가족상봉 등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따라 이런 움직임은 다른 대학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도 예상됩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과거와 같이 다시 소용돌이 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서울대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창조경영학과’를 신설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없던 일로 한 것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교연 논평] - 서울대 ‘창조경영학과’ 신설, 군사정권 때도 이러진 않았다
우리나라 헌법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대학들 역시 정부 정책을 비판할 때면 항상 이걸 들고 나오지요. 그러나 대학 현장에서 이것이 어떻게 해석되고 수용되는지 다시금 새겨볼 때라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대학이 정치적 흐름과 무관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학문적 방향마저 시류에 따라 그때그때 변해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