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는 후원회원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순수 민간연구소입니다.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4.01.29 조회수 :769
1월 29일,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대학 정원을 2023년까지 모두 16만 명 감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4~2016년 4만 명, 2017~2019년 5만 명, 2020~2022년 7만 명으로 세 차례 나눠 감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2014년부터 대학에 재정을 지원할 때 구조개혁(정원 감축) 실적을 반영하고 △모든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눠 최우수를 제외한 나머지 등급 대학의 정원을 강제 감축하며 △이를 뒷받침할 「대학 구조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무엇을 위한 구조개혁인가?
2018년부터 고교 졸업생 수가 급격히 줄어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이 속출할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교육부는 그 규모를 16만 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 정원 축소는 불가피한 일이고, 교육부도 수년전부터 추진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은 구조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과도한 사립대학 의존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의 불균형 △강소대학보다 대규모대학 육성 △열악한 교육환경 △부정비리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대학 입학생이 급격히 줄어 고등교육체제의 크나큰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이 기회에 구조적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보다 질 높은 고등교육체제로 개편하는 종합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수차례 요구해 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밝힌 구조개혁 추진계획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고, 그 동안의 비판을 수용한 새로운 접근도 없다. 오로지 대학 서열에 따른 구조조정과 공룡화된 수도권 주요 대학을 현상 유지시키는 기존의 방식대로 16만 명의 대학정원을 기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것밖에 없다.
2013년 교육부 정책연구팀, ‘수도권/지방 감축 비율 조정해야’
# 2012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립대학 재학생(76%)이 국․공립(24%)의 3배에 달한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을 제외한 OECD회원국 대부분은 전체 대학생의 80~90% 이상이 국․공립에 다닌다. 미국 또한 대학 수는 사립이 더 많지만 학생 수는 국․공립 비중이 68%에 이른다.
# 2012년 현재, 전국 4년제 일반대, 산업대, 교육대 및 전문대학 입학정원 55만6천여 명 가운데 서울·경기·인천지역이 20만4천여 명으로 36.6%에 이른다. 전국 대학 입학정원의 1/3 이상을 수도권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10년간(2002~2012년) 대학 입학정원은 수도권 대학이 1만 7천여 명, 지방대학이 8만 3천명 감축했다.
2013년 10월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정책연구팀’은 ‘2004~2013년 동안 지방대학 및 전문대학 위주로 정원이 감축되어, 현 추세가 유지되면, 2030년에는 수도권 소재 대학 비중이 현격히 확대(9% 증가)’되지만 ‘국립대학 입학정원은 0.5% 증가’하는데 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 10월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정책연구팀’은 '지역별(수도권과 지방) 정원 감축 비율 조정’도 해야한다고 발표했다.
(이미지=대학구조개혁정책연구팀, '학령인구 감소 등 환경변화에 대비한 대학구조개혁 전략 및 방안' 발표문 갈무리)
이는 기존의 대학구조조정이 수도권 팽창을 더욱 확대시켰고, 사립대 중심의 기형적인 구조도 계속 유지되었으며, 이대로 가면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그래서 연구팀은 ‘정부가 대학별 감축량을 제시하되, 지역별(수도권과 지방) 정원 감축 비율 조정’도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런 지적을 무시했다.
2014년 교육부, ‘최우수 대학은 정원 자율 감축 유도’
교육부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대학까지 강제로 정원을 감축하는 것은 오히려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5등급 가운데) 최우수 그룹 대학은 정원의 자율 감축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최우수 그룹 대학은 상대적으로 수도권 대학이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장관 발언은 지방대학 중심의 정원 감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교육부는 ‘지방대 죽이기 아니냐’는 지적에, 계량화된 수치로 비교 평가(정량평가)했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특성화 지표나 교육과정 등에 대한 평가(정성평가)를 반영해 ‘지방대학이 불리하지 않’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성평가는 말 그대로 계량화하기 힘든 내용에 대한 평가다. 교육부가 제시한 내용 가운데, 대학발전계획, 학사운영, 사회공헌, 대학특성화 등이 이 영역에 해당한다. 이 부분에서 지방대학들이 수도권대학과 수치로 평가되는 정량평가의 차이를 뛰어넘을 만한 성과를 나타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처럼 막연한 내용의 평가에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특히 교육부는 ‘교육계, 대교협·전문대교협, 산업계, 법조계, 언론계, 지역발전위원회 등에서 추천한 인사’들로 대학구조개혁위원회와 그 산하에 비상설 평가단을 구성해 평가 작업을 하겠다는 계획인데, 이들이 과연 수도권 대학들의 기득권을 뚫고 지역균형 발전을 고려한 평가로 지방대학들이 수긍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정치적 계산 엿보이는 교육부
이번 계획에는 평가방식과 평가지표 및 반영 비율, 등급별 정원 감축 비율 등 어느 것 하나 제시된 게 없다. 더군다나 교육부는 2015년 하반기에 평가등급을 확정하고, 전체대학 정원감축 계획 발표(’15년 하반기), 대학별 정원감축 계획 마련 및 모집단위별 입학정원 발표(’16년 상반기) 등의 일정을 밝혔다.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을 서둘러 발표했다. 하루 전 박근혜대통령이 ‘2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법안들이 통과 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지시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교육부는 2월부터 입법 추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안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고, 야당이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언제 입법될지도 모른다.
결국 교육부는 이번에는 구조개혁 일정만 발표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 선거 이후에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일정에도 ‘대학구조개혁위원회 평가편람 확정’을 2014년 8월로 예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지역과 지방대 반발을 의식해 선거 이후로 미룬 것이다.
아울러 교육부는 현 정부에서 4만 명만 감축하고 나머지는 2018년 이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차기 정부 감축 인원까지 밝힌 매우 이래적인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연평균 1만 명 이상씩 감축됐다. 다시 말해, 지금같이 지방대 중심의 자발적 정원 감축만으로도 박근혜정부 목표치는 달성 가능하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급격한 정원 감축으로 대학의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을 굳이 떠안지 않겠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대신 교육부는 현 정부에서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여론 조성과 정원 감축 관련 법안을 만들어 차기 정부가 강제적으로 정원 감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학 해산 시 설립자에게 잔여재산을 돌려주거나, 등록금으로 마련한 교육용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하는 등의 독소 법안에 대한 비판 여론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대학 정원 감축의 불가피성이 강조될수록 이를 비판하는 의견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선 공약 파기, 구조개혁 계획 전면 재검토해야
교육부는 2013년 6월 ‘전문대학 육성 방안’을 내놓았고, 7월에는 ‘지방대학 육성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박근혜대통령의 대선 주요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 계획대로라면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은 육성 대상이 아니라 구조개혁 대상일 뿐이다. 이번에 발표된 구조개혁안의 최대 피해자는 교육부의 의도와 무관하게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전문대학과 지방대학을 육성하겠다고 한 것은 무엇이고, 몇 개월 전에 교육부가 구체적인 육성 계획을 내놓았던 것은 뭐란 말인가? 이것 역시 공약 후퇴 또는 공약 파기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나왔다. 그런데도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른 소비자(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강조하던 정권들은 대학설립을 자율화 시켰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책임진 정책당국자 한명 없이 무턱대고 대학정원을 감축하겠다고 한다. 그 사이 수도권 대학의 공룡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은 정권의 필요에 따라 육성 대상도 되었다가, 개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참고로, 미국의 MIT공대, 프린스턴대, 예일대, 스탠포드대, 하버드대, 중국의 홍콩과기대 등 세계 주요 대학의 학부 학생 수는 대부분 1만 명을 넘지 않는다. 영국 옥스퍼드대, 캠브리지대, 일본 동경대, 중국 칭화대 또한 1만 5천여 명 이내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도권 주요 대학 대부분이 학부 학생 수가 1만 명을 넘고, 2만 명 이상인 대학도 있다.
지방대학이나 전문대학 중심의 퇴출 또는 정원감축이 핵심인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안을 전면 철회하고, 우리나라 고등교육체제의 구조적 문제점 해소 및 개편 등에 대한 종합적인 개혁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