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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3.12.20 조회수 :591
SNS시대에 80~90년대 낡은 선전물로 치부되던 ‘대자보’가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안녕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았던 대학생들이 실상 그렇지 않음을 하나, 둘 표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저마다의 목소리를 담은 ‘대자보’는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새로운 사회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에는 동의를 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은 그 같은 목소리가 자유롭게 소통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불통’을 강요하는 대학의 모습이 가관입니다. 인제대를 비롯해 울산대, 중앙대 등에서 학교 측이 ‘학생의 정치 활동 금지’와 ‘환경 미화’ 등의 이유를 들어 대자보를 직접 철거하거나, 관련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확산됐습니다. 대자보 훼손을 막기 위해 학생들이 밤새 지키는 진풍경도 벌어집니다.
(이미지='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개설한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페이지 갈무리)
일부의 모습일 수도 있으나 대학마저 “정치 관련 대자보는 게시판에 붙일 수 없다”는 얘기를 부끄럼 없이 하는 마당에 고등학교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교육기본법의 ‘교육의 중립성’ 조항이 엉뚱하게 학생들의 기본권마저 억압하는 법적 근거로 해석되고, 심지어 교장이 이를 경찰에 신고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대학에서조차 대학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이 같은 대자보 부착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여전히 70% 이상의 대학에서 유신정권 당시 학도호국단 학칙 독소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정진후 의원(정의당)이 발간한 「대학민주화 실태진단」에 따르면, 전국 4년제 180개 국・공・사립대학 가운데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 집회 및 표현, 결사의 자유와 관련 ‘사전 승인’ 조항이 있는 대학이 74.4%(134교) △게시물・광고 사전 승인조항이 있는 대학이 72.8%(131교) △간행물 사전 승인 조항이 있는 대학이 77.2%(139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전승인 조항이 없는 대학 중에서도 학생징계규정 등에 허가되지 않은 집회나 게시물 등을 게재했을 경우 징계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은 대학들이 학생들의 활동을 사전에 규제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상당수 대학에서 이들 조항이 유지되기는 하나,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조항이 폐지되지 않고 유지되는 한 대학당국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꺼내쓸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학들의 학생 징계, 강연 취소, 대자보 철거 등 각종 학생활동에 대한 제한 사례는 이러한 우려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대학 내에서조차 ‘정치활동’으로 규제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 사회가 안녕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대학이 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