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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3.06.12 조회수 :497
박근혜정부가 10일 ‘전문대학 육성 방안(시안)’을 발표했다. 전문대학만의 별도 정책이 나온 것은 2001년 6월 김대중정부가 발표한 ‘전문대학 발전방안’ 이후 12년만이다. 학벌주의에 따른 사회적 홀대를 받던 전문대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정부의 이번 발표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역대 정부와 다를 바 없는 ‘특성화’
그러나 교육부 발표 내용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칠뿐더러 많은 우려를 낳게 한다. 교육부가 밝힌 ‘전문대학 육성 방안(시안)’의 핵심은 △특성화 전문대학 100개를 육성하고 △수업연한을 1~4년으로 다양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분야 산업기술명장을 양성하는 특수대학원을 설치(연간 100명 양성)하고 △2014년부터 기존 16개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집중 육성하며 △전문대학생의 해외 취업을 돕기 위해 연간 600명을 양성하는 ‘세계로 프로젝트’ 추진 의사도 밝혔다. 교육부는 이를 통해 2017년까지 전문대학 취업률을 80% 이상 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먼저 ‘특성화 전문대학 100개 육성’을 보자. 2013년 현재 전문대학은 139개교다. 이 가운데 100개를 특성화하고, ‘경쟁력 없는 대학은 구조조정’하겠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다. 그런데 교육부도 밝혔듯이 전문대학 특성화사업은 김영삼정부 후반기부터 이명박정부 전반기까지 진행되어 왔고, 예산 규모의 차이가 있었지만 2010년부터 80개 전문대학을 대상으로 ‘대표 브랜드’라는 특성화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또다시 ‘전문대학 육성 방안’으로 100개 대학을 특성화하겠다니 과거의 특성화 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이번 발표는 ‘39개’ 전문대학의 퇴출을 공식화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대학과 대학 경계 없애는 수업연한 다양화
두 번째는 수업연한 다양화 문제다. 이미 전문대학의 상당수 학과가 3년제로 전환(간호과는 4년)되었고, 100여개 대학이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수업연한을 다양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전문대학 운영자들은 수업연한을 최대한 늘리려 할 것이다. 설사 교육부가 학생 수 감축을 요구해도 학년이 늘어 등록금 수입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수입이 줄어든다면 전문대학 총장 모임인 ‘전문대교협’이 수년간 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학생들은 수업연한 증가만큼 학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업연한의 다양화로 ‘전문직업인 양성’이라는 전문대학의 특성은 사라지고, 혼란만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수업연한 연장이 필요한 학과도 있겠으나, 전문대학 운영자들이 과도하게 수업연한을 연장할 경우 교육의 질적 차이 없이 학생들 재학 기간만 길어질 수 있다. 이미 수업연한을 연장한 학과들의 교육 내용과 질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는지도 의문이다.
아울러 이 조치로 한정된 입학자원을 유치하기 위해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이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지방 4년제 대학 관계자들이 이번 발표 내용을 비판하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4년제 대학들은 그 동안 전문대학이 강점을 보였던 인기학과 대부분을 신설해 스스로 정체성을 허물었고, 교육부도 이를 방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대학의 수업 연한을 더 풀 경우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 밖에 2014년부터 기존 16개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집중 육성하기로 한 점도 그렇다. 전문대학이 평생직업교육대학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비 부담이 없어야 한다. 선진국들이 전문대학 같은 직업교육기관의 대부분을 공립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선정될 16개 대학 모두가 사립일텐데 저렴한 학비를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교육부가 전문분야 산업기술명장을 양성하는 특수대학원을 설치하고 연간 100명에게 석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방안은 우리나라 명장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과연 학위 보유 여부 때문인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할 뿐이다. 전문대학생의 해외 취업을 돕기 위해 연간 600명을 양성하는 ‘세계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지금껏 교육부가 추진해 왔던 정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공약 이행만을 위한 앞뒤 안 맞는 현실 진단
교육부가 발표한 ‘전문대학 육성 방안(시안)’의 전체 내용은 박근혜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세부 내용은 역대 정부정책에 살을 붙이거나 공약에 맞게 차용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전문대학 현실 진단도 개별 정책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 느낌이다.
교육부는 사립전문대학이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2002년 7개였던 국립 전문대학을 모두 통폐합시켜서 2013년 현재 1개만 남겨 둔 것이 바로 교육부다. 그러면서 사립전문대학이 많다고 얘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얘기다. 2005년 8개였던 국립 산업대학 역시 모두 통폐합시키거나 일반대학으로 전환시켜 2013년 현재 한 곳도 남겨놓지 않았으면서 이를 전문대학 수업연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으로 제기하는 것 또한 설득력이 없다.
특히 교육부가 사립전문대학이 많다는 것을 전제로 전문대학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면 최소한 사립전문대학 실태 조사라도 했어야 한다. 교육여건이 특성화를 추진할 만큼 갖춰져 있는지, 법인은 법적 책임을 다하는지, 대학 재정 운영 상황은 어떤지, 부정․비리는 없는지, 국고지원금을 투명하게 집행할 여건은 되는지 등을 말이다. 최근까지도 통계 조작 등을 통해 국고보조금을 횡령했던 전문대학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아직까지 재판 중인 사람도 있다. 전문대학 육성 사업이 실효를 얻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이에 대해 말 한마디 없다.
교육부는 또한 전문대학의 문제점으로 산업인력 미스매치와 취업분야 전공 불일치를 들었다. 물론 ‘전문직업인’ 양성이 목적인 전문대학 졸업생이 산업체가 요구하는 직무능력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산업현장 요구를 대학이 그때그때 따라간다는 건 무리다. 대학은 기본적인 직무능력과 응용력만 가르치고 구체적인 것은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한 1990년보다 취업분야 전공 일치도가 감소한 것도 전문대학이 점차 종합화하면서 다양한 전공이 신설된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든 고등교육기관에 해당되는 것으로, 전문대학만의 문제로 볼 수도 없다. 취업과 연계시키기 위해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문대학 육성은 정확한 현실 진단 그리고 전체 고등교육개혁과 맞물려야
마지막으로 교육부는 이들 정책을 통해 2017년까지 전문대학 취업률을 80% 이상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황당한 느낌도 들지만 정부가 전문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겠다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취업이라는 것이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정부가 과연 일자리를 그만큼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가 목표율까지 제시하며 취업률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생각도 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통령이 공약으로 전문대학 육성 의지를 밝히고, 정부 부처가 이를 이행하려 노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비록 규모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전문대학 지원을 위해 국고 지원금을 확대한다면 이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전문대학 육성 방안은 역대정부 정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정확한 현실 진단 속에서 나와야 한다. 법정 기준에 한 참 모자라는 교육여건과 법인의 역할은 거의 없이 학생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상당수 대학에서 부정․비리가 적발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철저한 학벌구조에서 전문대학 출신들이 사회적 차별을 받은 현실에 대한 개선책 없는 육성 방안은 큰 울림을 줄 수 없다.
그리고 학령인구 감소로 전문대학뿐만 아니라 수도권 군소규모대학이나 지방대학 모두 벼랑 끝 위기에 서 있고, 반대로 수도권 주요 대학은 과잉 팽창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고등교육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교육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이고, 전문대학 육성 방안도 이와 맞물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 공약 이행만 강조한 나머지 개별 정책 형태로 추진될 경우 정책간 혼선과 현장의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발표될 ‘지방대학 육성 방안’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