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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1.05.03 조회수 :760
지난 달 29일, 전문대학 관련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했다. 이에 따라 전문대학에서 △‘대학교’ 명칭 사용 △관련 분야 재직 경력 없이도 전공심화과정 입학 △4년제 간호학과 설치가 가능하게 됐다. 전공심화과정은 3년제 학과나 전공 졸업생이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하면 학사학위를 받도록 한 것으로 기존에는 관련 분야의 재직 경력이 있어야 했지만 개정안은 바로 전공심화과정에 입학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번 개정의 의미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문대학의‘4년제 대학화’라 할 수 있다. 4년제 대학처럼‘대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일부 전공에 한한 것이지만 4년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2009년 전문대학 장(長)의 명칭으로‘총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과 같은 맥락의 조치다. 우리나라 전문대학이‘전문직업인 양성’이라는 고유 목적을 부여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년제 대학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받고, 최근 들어 사학퇴출이라는 존폐의 위협마저 받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해와 별개로 이번 조치는 합당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우선, ‘대학교’ 명칭 허용 방침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 선택 시기에‘전문대학’을 ‘대학교’라 부른다고 이 때문에‘전문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이 과연 있을까? 반대로‘전문대학’이 아니라‘대학교’라 불러서 취업에 보탬이라도 될 수 있을까? 기업체에서 이를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런 실익이 없는 정책을 요구한 전문대학 당국자들이나 이를 덥석 들어주는 교과부가 딱할 뿐이다.
수업 연한 연장도 문제다. 물론, 수업 연한의 연장은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전문대학 간호학과의 경우, 졸업생의 80-90%가 4년제 대학에 편입해 학사학위를 추가로 따고 있으니 수연 연한을 연장해 이러한 번거로움과 낭비적 요소를 없애자는 것이다. 그러나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졸업생 수가 많다고 모두 학과나 전공의 수업 연한을 4년으로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간 낭비이고, 돈 낭비이다. 그만큼 수업 연한 연장은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전문대학 여러 과에서 4년제로 늘려 학사학위 줄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수업 연한 연장으로 직업교육의 과잉 문제나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즉, 전문대학 당국자들이 바라는‘4년제 대학화’란 4년제 대학에 맞먹는 경쟁력 강화라기보다 4년제라는 형식을 빌려 신입생 유치와 수업 연한 연장에 따른 재정 확충 등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무리한 조치들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전문대학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 정부와 정치권이 이에 대한 면죄책으로 이와 같은 전문대학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문대학은 사각지대에 오래 동안 방치돼 왔다. 김대중정부 이후 별도의 전문대학 정책은 나온 적이 없고, 선택과 집중에 의한 단순 재정지원 사업만 유지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전문대학 운영자들은 교육여건 개선과 특성화를 통한 질적 혁신보다는 학생 등록금을 이용한 재산 불리기에만 몰두했다. 전문대학의 위상 저하는 정부와 전문대학 운영자들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경쟁력이 없는 것이 마치 4년제 대학과의 차별만이 전부인양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산업대학이 거의 대부분 없어졌고, 전문대학마저 퇴출 대상에 몰려 있어 직업교육 시스템이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상태가 계속되면 직업교육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직업교육의 미래는 학벌에 따른 차별과 이로 인해 대학 진학에 목을 메야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과 맞물려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상태를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와 전문대학 당국은 엉뚱한 일에 매진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직업교육체제를 정상화할 수 있는 근본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