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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0.03.04 조회수 :449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국내 대학 수시모집 입학사정관 전형에 응시한 수험생 50여명이 브로커를 통해 추천서와 수상 실적 등 제출 서류를 조작한 정황을 잡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서울 강남 일대에서 활동하는 고액 과외 브로커 이모씨로부터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학부모들에게 각종 대회 상장은 2천만 원, 장관이나 국회의원 명의의 가짜 추천서를 만드는 데는 3백만 원에서 4천만 원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학부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2천만 원을 주면 외국의 한 도시에서 주최한 글짓기대회 입상경력 서류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대다수의 반응은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입학사정관제 도입 초기부터 국회를 비롯해 언론, 교육단체들이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소도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입학사정관제도, 우리 현실에서 성공 할 수 없어>
물론 수사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와 상관없이 입학사정관제는 이미 부정입학의 온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학원이나 입시 컨설팅업체가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거나 경력을 조작해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고, 대학입학처장들은 대학이 검증을 통해 이러한 서류 조작 여부를 명백하게 가려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비리의혹은 입학사정관제 부작용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탈락한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제보가 이어진다면 시시비비를 둘러싼 대학가의 혼란은 가중될 것이며, 부정입학 여부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또 심한 몸살을 앓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특히 우려되는 것은 바로 ‘3불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금으로서는 입학사정관이 자의에 의해서든 아니면 대학의 압력에 의해서든 학생선발에 있어 고교등급제 혹은 기부금입학제(본고사는 입학사정관제에서 적용되기 어려운 관계로 제외)를 적용한다해도 이를 외부에서 확인할 방도가 없다. 3불 정책 폐지를 요구해 온 주요 대학들이 고교등급제와 기부금입학제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정운찬 총리의 3불 폐지 시사발언은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정부의 최고위급 관료가 3불 폐지를 언급한 상황에서 과연 고교 등급을 매기거나 기부금을 받고 학생을 선발한 대학에 결단 있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정부는 그간 3불 폐지를 요구해온 주요 대학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고교등급제 또는 기부금입학제 적용의 면죄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지속되는 한 이미 ‘3불 정책’ 의 근간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서울 주요 사립대학을 필두로 대규모 입시부정이 드러났을 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한국교육개발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식적으로 기부금입학제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학재정난으로 인해 부정입학 불가피했으므로 기부금입학제를 아예 양성화하자는 것이 주장의 골자였다.
90년대 초반의 이런 과정이 오늘날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이후 입학사정관제에서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 사례가 적발될 경우 주요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기부금입학제 도입을 거세게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과 맞물려 3불 정책 폐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입학사정관제는 처음부터 실패 우려가 컸던 정책이다. 따라서 전면시행을 중단하여 부정비리와 사교육비 증가를 막도록 해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우리나라 입시문제는 특정 제도 도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벌주의에 기반한 대학 서열화와 교육 양극화 해소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