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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21.08.11 조회수 :1,848
집권여당이 학점비례 등록금제에 적극 나서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이하 민주당 전대위)는 학점비례 등록금제 도입 관련 전국 만 29세 이하 1,1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1.2%가 찬성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수용해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청년공약의 핵심으로 ‘학점비례 등록금제’를 제시하기도 했다.1)
현행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지금도 학점비례 등록금 징수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학점별 등록금 징수를 학기별, 월별 등 다양한 등록금 징수방법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전대위는 보다 강력한 학점비례 등록금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 19대,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발의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내용에 담겨 있다. 우원식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주 골자는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의 학점비례 등록금 징수조항을「고등교육법」으로 상향 조정하고, 등록금 징수방법을 학점비례 등록금제로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학점부터 3학점까지는 해당 학기 등록금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4학점부터 6학점까지는 해당 학기 등록금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7학점부터 9학점까지는 해당 학기 등록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10학점부터 12학점까지는 해당 학기 등록금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 13학점 이상은 해당 학기 등록금의 전액을 징수할 것을 제안했다.
등록금 문제의 본질은 수익자부담원칙
학점비례 등록금제 도입 요구는 지난해부터 대학가 쟁점으로 떠오른 등록금 환불의 연장선상에 있다. 코로나19로 상당수 대학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하고, 휴학하거나 이수학점을 줄이는 학생들도 늘어났는데 대학은 예전과 동일하게 등록금을 징수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장학금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등록금 부담이 여전한 현실에서 대학의 등록금 징수방법을 개선해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려는 것으로 상당수 학생들의 지지를 얻을 만큼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점비례 등록금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현행 등록금 제도의 근본 문제는 무엇일까. 등록금이 비싸고, 불합리하게 책정되고, 불투명하게 사용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문제는 현상적인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문제의 본질은 수혜 받는 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고 대학 운영비를 전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조를 깨트리지 않고서는 등록금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장학금 제도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고등교육에 직접 개입해 등록금 부담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시기 중요한 점은 지난 70여 년간 이어진 수익자부담원칙을 전환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일이다. 국가장학금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인 반값등록금과 더 나아가 대학 무상교육을 논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학점비례 등록금제는 그 취지에 대한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들은 만큼 학생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수익자부담원칙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학점비례 등록금제에 대해 다양한 반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학당국과 학생 사이에 합의점 찾기 어려운 논쟁 이어질 것
민주당 전대위의 학점비례 등록금제 도입방안에 대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단순히 학점 신청 구간별로 등록금 액수를 나누어 내게 되면 대학은 비용의 손실이 발생하여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점비례 등록금제를 도입할 경우 등록금수입 축소를 우려하는 대학이 취할 대응방안은 크게 두 가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대학의 교육과정 및 학위 취득을 위한 졸업이수학점을 상향조정할 것이다.「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의 교육과정 및 학위 취득을 위한 졸업이수학점은 학칙에 따라 결정되므로 대학이 이를 상향조정하는 것은 현행법상 가능하다. 이 경우 대학교육이 필요이상으로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 이는 이미 우원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국회검토보고서에서 제기된 우려다.
둘째, 학점당 등록금 기준을 새롭게 책정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대교협은 교육인적자원부에 제출한 ‘대학 등록금 실태조사 및 책정모델 개발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스스로 ‘학점기준 등록금 차등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학점 수를 기준으로 하되, 교육원가 분석 결과, 단과대나 계열의 교육 목표 등을 반영해 등록금을 책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러한 전례에 비춰보면 대교협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감축, 대학의 경쟁력 강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 등으로 교육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으므로 학점당 등록금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현행법상 등록금인상률 상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학점당 등록금제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이 제각각이 되면 대학당국이 등록금에 대한 가계부담 경감 차원에서 시행된 등록금인상률 상한제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적정 이수학점은 어느 정도인지, 교육원가는 어떻게 산출되어야 하는지, 적정한 학점당 등록금 단가는 얼마인지를 둘러싼 결코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논쟁의 소용돌이에 대학구성원과 학교당국 모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등록금 정책 필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앞서 언급한 고등교육 재정과 관련된 중요한 핵심과제가 휘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바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 강화다.
등록금의 수준은 교육원가가 아니라 정부가, 대학운영자가 어느 정도 대학재정을 책임지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정부의 책임성이 높을수록,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높을수록 등록금은 낮고 더 나아가 무상등록금까지 실현된다.
낮은 등록금, 무상등록금을 실현하는 나라는 정부가 고등교육을 책임짐으로써 경제적 부담 없이 교육기회의 평등을 누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사회 내부의 합의에 기반하여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됐지만 사립대학 등록금은 OECD 회원국 중 4위를 기록하고 있고, 세계 9위의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비에 대한 정부 부담율은 54%로 OECD 평균치(75%)에 한참 못미친다.
이러한 현실을 바꿔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받은 ‘수익’(학점) 만큼만 등록금을 지불해야한다는 논리보다는 고등교육의 ‘수익’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몫이므로 등록금은 저렴해야 하고 더 나아가 무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학점비례 등록금제를 도입한다 해서 정부의 재정지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등록금수입 예측이 어려워 정부의 안정적 지원이 보장되기 어렵고, 학점당 등록금에 따라 국가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등록금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차기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집권 이후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라는 큰 구상 속에서 보다 면밀히 검토된 등록금 정책을 다시 내놓길 기대한다.
1)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외에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는 가운데 등록금의 한시적 인하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