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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8.03.05 조회수 :883
비리를 저지른 대학운영자가 법인을 해산할 경우 잔여재산 귀속에 제한을 두도록 한 일명 ‘비리사학 먹튀방지법(사립학교법 개정안)’의 2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지난 20일, 28일 두 차례에 걸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위헌소지가 있다’는 야당 소속 위원의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한 채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로 넘겨 재논의하기로 했다.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립학교 법인 임원 또는 운영자가 교육관계 법령을 위반해 관할청으로부터 회수 등 재정적 시정요구를 받았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고 학교법인이 해산되는 경우, 잔여재산 귀속에 제한을 둔다는 것이다.
그 제한이란 정관에서 학교법인 잔여재산 귀속자로 지정된 자가 일정 조건(해산한 학교법인 설립자 등과 친족 관계에 있는 법인, 재정 보존 시정 요구 미이행 법인)에 해당하는 경우 잔여재산 귀속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서남대 이미지(서남대 누리집 갈무리)
이홍하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서남대 잔여재산 600억 원
개정안이 제기된 계기는 서남대 폐교다.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설립자 이홍하의 횡령 및 불법 사용액 333억 원 회수 등 시정요구 사항 미이행, 정상적인 학사운영 불가능 등을 이유로 서남대 학교폐쇄 및 법인해산 명령을 내렸다.
서남대 학교폐쇄로 대학구성원들은 배움터와 일터를 잃고, 지역사회는 동력을 상실했는데 서남학원 정관에 따르면, 서남학원 잔여재산은 이홍하가 설립한 또 다른 학교법인인 신경학원(신경대)와 서호학원(한려대)에 귀속하게 되어 있어 부실운영의 책임자인 이홍하는 재산상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서남대 폐교 후 잔여 재산은 모두 800억 원 정도로, 이 가운데 체불한 교직원 임금과 밀린 공사 대금 등을 제외하면 잔여재산이 최대 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며 “현행 사립학교법대로라면 고스란히 이씨 일가에게 재산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1
부실운영의 책임자가 재산을 가져가는 것은 피해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될 뿐만 아니라 제2, 제3의 부실을 낳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2000년, 교육부는 이홍하가 설립한 대학 중 광주예술대에 폐쇄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학교 폐쇄로 광주예술대 학생 200명은 학교 밖으로 쫓겨났지만 광주예술대 잔여재산은 이홍하가 설립한 서남학원(서남대)에 귀속됐다.2 이홍하는 서남대를 비롯한 자신이 설립한 학교에서 또 다시 공금을 횡령했으며 결국 2016년 구속됐다.
2000년 당시 이번 개정안과 같은 내용이 사립학교법에 담겨 있었거나 보다 엄격한 법 집행으로 대학운영에 대한 이홍하의 개입을 막았다면 지금과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폐교대학 잔여재산 대부분 설립자에게 귀속
부실운영의 책임자에게 잔여재산이 고스란히 귀속된 사례는 서남대뿐만 아니라 이미 폐교된 다른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친인척 중심의 대학운영, 교비횡령 혐의 등으로 몸살을 앓다가 2013년 자진 폐교한 경북외국어대의 잔여재산은 정관에 따라 설립자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무열교육재단(대구 대원고 운영)으로 귀속됐다.3
학교는 폐쇄됐지만 법인은 해산명령을 받지 않아 잔여재산을 법인이 활용하거나 동일법인 산하 교육기관으로 귀속시킨 사례도 있다. 2012년 감사원 감사결과 십수억원의 손실을 충당하지 못해 자진 폐교한 건동대는 학교법인인 백암교육재단이 건동대 부지활용을 위한 도시계획 변경안을 안동시에 제안해 대학부지를 사설 공무원학원으로 사용하고 있다.4
2011년 학교폐쇄명령을 받은 명신대의 잔여재산은 동일법인 산하 목포성신고등학교로 귀속됐다.5 명신대는 교육부 감사결과 교비횡령, 학위장사 등이 적발되어 68억 원의 횡령금 회수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6
2014년 폐쇄된 벽성대 역시 학교법인인 충렬학원이 광성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잔여재산의 손실을 보지 않았다.7 교비회계 횡령·불법사용액 379억여원 회수, 체불임금 333억원 지급 등을 이행하지 못한 채 지난해 폐교가 결정된 한중대의 잔여재산은 아직 청산중에 있으나 학교법인 광희학원이 운영하는 동해 광희중·고등학교에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전문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자진 폐교한 대구미래대는 법인을 해산하지 않은 관계로 학교부지 5만 평과 현금성 자산 80억원이 동일법인 산하 창파유치원에 통합될 것으로 전망돼 대학구성원들로부터 의도된 ‘흑자부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8
현행 사립학교법과 개정안은 학교법인 해산시 잔여재산에 관한 사항만 다루고, 법인 해산없이 동일법인 산하 교육기관만 폐쇄할 경우의 사항은 다루고 있지 않다. 따라서 부실운영으로 대학 문을 닫게 만든 당사자에게 교육기관 운영의 책임을 계속 부여하는 것이 합당한지 이 또한 짚어봐야 할 점이다.
‘비리사학 먹튀 방지’ 사학법 반드시 개정돼야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20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김진태 위원은 이 개정안이 ‘전체 사학을 준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는 해묵은 논리를 내세워 법안통과를 반대했다.
이 법안의 적용대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교육관계법을 위반한 학교법인 중에서도 관할청이 재정적 보전을 하라는 시정요구를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고 해산하는 학교법인만이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전체 사학이 긴장할 일이 아니며, 깨끗하고 투명하게 대학을 운영한다면 더더욱 문제될 것이 없는 내용이다.
이번 개정안 무산의 후과는 대학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기본역량진단’으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평가에 따른 정원감축 정책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평가에 따른 정원감축 정책은 ‘대학운영이 부실하면 폐교도 각오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사례에 비춰봤을 때 대학운영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대학운영자에게 이러한 엄포가 통할지 의문이다. 잔여재산을 보존할 수 있는 현행법이 계속 유지되면 ‘폐교’해도 손해될 게 없기 때문이다. 대학구성원들만 피해를 입을 뿐이다.
교육부와 여당도 이번 개정안이 무산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한 김상곤 교육부총리와 여당 소속 위원은 사학비리 근절이라는 원론적 주장만 반복했으며 결국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로의 회부를 막지는 못했다. 제2소위원회 위원장이 김진태 의원이고 제2소위가 이른바 ‘법안 무덤’이라고 불리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법 개정이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9 이대로라면 사학비리 근절이라는 국정과제 이행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비리사학 먹튀 방지’ 관련 사립학교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리사학 먹튀 방지법’도 어디까지나 사후조치다. 무엇보다 비리를 저지른 운영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부정비리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사학비리 근절을 위한 정부의 청사진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김기중, “[단독] 서남대 등 비리 사학 잔여재산 대물림 막는다”, 서울신문, 2017.12.20
2. 남원‧변진경, “서남대 사례로 본 비리사학 ‘흑역사’”, 시사IN, 2017.10.2
3. 조채희, “경북외국어대 폐교 인가…재학생 인근대학 편입”, 연합뉴스, 2013.5.1
4. 이두영, “건동대 폐교부지 기숙학원 탈바꿈”, 영남일보, 2013.11.22., 조윤주, “김재규경찰학원, 안동에 기숙형 학원개원”, 파이낸셜뉴스, 2014.10.30
5. 참고로, 목포성신고등학교도 2010년 감사에서 학교회계 부당인출과 시설공사비, 재정결함보조금 부당집행 등 9건의 회계부정과 횡령이 적발되어 2012년부터 3년간 매년 2학급 감축, 시설사업비지원 중단 조치를 받은 바 있다.
6. 고승주, “명신대 사학비리 실태해부 “돈주면 학점준다?”“, 시사코리아, 2011.10.11
7. 임주영, “벽성대학 폐쇄 방침 확정…4번째 퇴출대학”, 연합뉴스, 2012.7.10
8. 김의진, “‘첫 자진폐교 전문대’ 대구미래대학교, 흑자폐교?”, 한국대학신문, 2018.1.31
9. 고유선, “직업교육훈련생 인권·안전 보장 의무, 관련 법에 명시”, 연합뉴스, 2018,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