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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6.03.29 조회수 :788
사립대 총장들이 교비회계와 법인회계의 일원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 156개 사립대 연합체인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3월 25일 16회 정기총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연구계획(안)을 공유했다.
얼마 전 법인 관련 소송비용까지 교비회계에서 쓸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바꾼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대학 재정을 법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학교법인의 원활한 경영활동을 위해” 필요하고, “선진국 어디에도 두 회계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회계 구분은 학생등록금에 의존한 사립대 운영에 최소한의 안전판
사립대학 총장들의 주장을 논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교비회계와 법인회계를 왜 구분하게 됐는지 살펴보자. 사립학교법 제정 당시인 1963년 6월 6일자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학교 법인의 거의 전부가 재산수익이 없는 불건실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사실상 학교운영이 학생공납금(등록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시설조차도 학생들이 내놓은 기성회비나 시설비로 충당하는 사례까지 빚어냈다. 이러한 악폐를 근절하기 위해 수익사업에 관한 회계와 학교경영에 관한 회계를 구분하여 별도 회계로 경리하도록 했다"
당시 언론을 지금 다시 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나 지금이나 사립대학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5일 명지대 자연캠퍼스에서 열린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기총회 모습 ·사진제공: 사총협
(이미지 및 사진 설명 = 교수신문 재인용)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사립대학 부정․비리
사립대학 총장들은 외국 사례를 들어 회계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우리나라 사립대학 부정․비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지난 2008~2012년 5년간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적발된 부정·비리와 부당운영으로 인한 재정 손실액은 4년제 대학 1,341억 원, 전문대학 629억 원에 달했다. 대학 당 평균 손실액으로 보면, 4년제 대학 84억 원, 전문대학 70억 원에 이르는 셈이다.1
2008~2014년 종합감사를 받은 37개 사립대학 지적사항을 살펴보면, 대학 당 지적사항이 평균 21건으로, ‘예산․회계’와 ‘법인’ 관련 지적사항이 전체 지적사항의 40%에 달했다.2 학교 수입인 학내 편의시설 수입과 기부금 등을 법인 수입으로 돌리고, 법인 사무처 운영비를 학교 예산으로 지급하며, 학교법인 이사장이 교비회계를 유용하거나 횡령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사립대학들의 요구는 현재 자신들이 자행하고 있는 ‘불법’ 행위를 ‘합법화’ 해달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최근 정부여당은 사립대학 법인이 스스로 문을 닫기만 하면 설립자나 이사장, 학교법인의 특수관계자가 출연한 재산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대학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그 명분으로 ‘낸 돈’ 만큼만 가져가게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교비회계를 법인회계와 통합한다면 학생 등록금으로 법인 설립자가 회수할 재산을 늘리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법인의 이해 관철이 총장의 역할인가?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이 같은, 대학 재정을 법인 마음대로 운영하겠다는 회계 통합의 요구를 다름 아닌 사립대학 ‘총장’들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립대학 총장은 안으로는 대학 행정과 의사결정 과정을 총괄하고, 업무를 집행하며, 밖으로는 대학을 대표하는 최고위 인사다. 총장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는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법인 정관 및 학칙에 명문화되어 있다. 그만큼 총장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립대학 법인 임원이 ‘학사행정에 관하여 총장의 권한을 침해’할 경우 교육부는 그 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사립학교법 제20조의2). 또한 법인회계와 달리 학교회계의 예산 편성권은 총장에게 있다(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규칙 제6조).
물론 학교 경영에 관한 중요사항을 모두 법인 이사회에서 최종 의결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법상, 사립대학 총장이 자율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법인과 대학은 엄연히 분리된 조직으로, 사립대학 총장은 법인의 결정을 단순 집행하는 사람이 아닌 대학을 대표하는 수장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를 향해서는 ‘대학 자율성’을 주장하며 대학의 평가와 재정지원까지도 자신들에게 위임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총장들이, 정작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법정부담금조차 제대로 대학에 지원하지 않는 법인에게는 무엇 하나 요구하는 것이 없다. 대학구성원들이야 피해를 보든 말든 ‘대학 자율성’을 훼손하는 법인의 이해를 마치 ‘대학 자율성’인양 주장하기 바쁘다.
대학 총장 모임은 사립대학 총장들의 협의체인 ‘사립대학총장협의회’뿐만 아니라 전체 대학 총장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서울 지역 주요 대학 회의체인 ‘서울총장포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 모임을 가능하게 하는 회비는 다름 아닌 대학 교비에서 지출된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 자율성’을 내세워 하는 것이라고는 하나같이 대학구성원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 않다. 도대체 왜 이런 모임의 운영비를 ‘교비’로 부담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대학 자율성’은 대학구성원들의 자율성
대학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대학 자율성’이라는 것은 법인의 자율성, 운영자의 자율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학구성원의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학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대학가는 프라임 사업 등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으로 대학 내 갈등이 극에 달했다. 대학의 자율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학문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총장들은 현실 논리를 이유로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있다. 법인의 요구를 대변하는 데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총장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대학 자율성’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립대학 총장들은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법인의 대변인으로 전락시키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 ‘대학 자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법인의 이해를 관철해서는 안 된다.
1. 국회의원 정진후, 『사립대학 부정․비리 근절방안』, 2013, 4쪽.
2. 국회의원 정진후, 『사립대학 감사제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2015, 27~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