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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의 합법화와 꼼수로 일관된 국립대학재정회계법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5.03.03 조회수 :599

-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분석 - 

 

3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재정회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을 검토한 결과, 법을 만드는 국회가 이런 식의 입법을 해도 되는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법원의 기성회비 납부할 의무 없다에 꼼수로 화답한 정부

 

재정회계법이 도입된 현상적인 이유는 20121월 국립대 학생들의 기성회비 반환 청구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재판부는 "(각 대학 기성회는) 대학이 징수한 기성회비는 아무런 법률적 원인 없이 얻은 부당이득이므로 학생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진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판결을 내렸고, 다른 학생들의 소송도 줄을 이었다. 다급해진 정부와 국립대학 당국자들은 국회에 대체 입법을 요구했고, 국회가 이를 수용해 이번 법안이 제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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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일 국회 앞에서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와 대학생들이 '기성회비를 수업료로 전환하여 통합징수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이미지=참여연대 누리집)



물론 법원은 기성회비 반환 주체를 대학과 국가가 아닌 기성회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기성회비가 도입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를 실제 사용한 주체가 대학과 국가임을 감안하면 법원의 판결은 논란의 여지가 컸다. 따라서 정부는 합리적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 동안 국립대 운영비용을 정부가 직접 부담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변칙적으로 전가시킨 사실을 인정하고, 부당하게 징수해 온 기성회비를 정부가 부담했어야 했다. 국가가 설립운영하는 국립대학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민간 부담이 큰 기형적인 재정 구조를 개선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외면한 채 수업료에 기성회비를 통합하는 꼼수를 부렸다. 다시 말해 법적 근거 없이 징수했던 불법기성회비가 재정회계법 제정으로 합법이 돼 버린 것이다. 이를 제어해야 할 국회도 정부의 책임을 묻기보다 불법합법화에 동참해 버린 셈이다.

 


재정회계법 제정이 우려스러운 이유

 

제정된 재정회계법은 모두 4, 29(부칙 5)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법의 목적(1)을 보면, ‘국립대학 재정 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여 국립대학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확립한다고 되어 있다. ‘자율성효율성을 높여 공공성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확립한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법안 중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 정부의 재정 지원 여부이다. 법 제4조는 국가는 국립대학의 교육 및 연구의 질 향상과 노후시설 및 실험·실습기자재 교체 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1)’, ‘국가는 종전의 각 국립대학의 예산, 고등교육예산 규모 및 그 증가율 등을 고려하여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등 국립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총액으로 출연하여야 한다(2)’, ‘국가는 각 국립대학에 지원하는 출연금의 총액을 매년 확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3)’고 규정했다.

 

언뜻 정부의 재정 지원 의지를 반영한 것처럼 보이나, 구체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다. ‘교육 및 연구의 질 향상이라는 추상적인 표현과 함께 노후시설 및 실험·실습기자재 교체 등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재정만을 안정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대신 국립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등은 종전의 각 국립대학의 예산, 고등교육예산 규모 및 그 증가율 등을 고려해 총액으로 출연하되, 매년 확대하도록 노력하여야한다고 규정했다.


 

국고지원 기존보다 늘어날 가능성 크지 않아

 

이를 해석하면, 제한적인 노후시설 및 실험·실습기자재 교체예산만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예산 증액은 정부가 노력하는 선에서 판단을 하겠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기존에 국립대학에 지원하던 예산 규모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반면, 법인화된 서울대는 국가는 서울대학교 교육의 질 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서울대학교에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하여야(서울대법 제29조 제1)’하고, ‘종전의 서울대학교의 예산, 고등교육예산 규모 및 그 증가율 등을 고려(30조 제2)’하되, ‘서울대학교의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위하여 매년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및 교육·연구 발전을 위한 지원금을 출연(出捐)하여야 한다(30조 제1)’고 규정하고 있다. 전체 서울대 재정의 안정적인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는 것이다. 법인화된 서울대와 일반 국립대학의 재정 지원 격차가 커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만약 국립대학들에 지원되는 국고가 부족할 경우 대학들은 자체 수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재정회계법에 규정된 자체 수입 항목 가운데 대학이 독자적으로 수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학생 등록금 수입 외에 공개강좌, 산업체 위탁교육, 전공심화과정, 시간제 등록생, 평생교육기관 운영 등을 활성화시키는 것 밖에 없다. 국립대학들이 방학기간 중 불법으로 고액 영어캠프를 운영해서 논란이 됐던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등록금 인상과 변칙적 재정 운영 불가피

 

아울러 국립대학들은 학생 등록금 인상에 매진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국립대학들도 사립대학과 마찬가지로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한 등록금 인상은 어렵다. 그러나 2014년 일반 국립대학 평균 등록금이 418만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수업료가 120만원, 기성회비가 298만원이었다.

 

지금까지 수업료는 사실상 정부가 인상을 억제해 왔기 때문에 대학들은 298만원인 기성회비만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인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정회계법 이후 수업료 120만원도 대학이 자체적으로 인상할 수 있게 돼 학생들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재정회계법 제정 과정에서 논란이 일자 국립대학이 적립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삭제했다. 그러나 적립금 조항이 삭제됐어도 국립대학들은 이월금을 통해 예산을 계속 남길 수 있다. 이미 상당수 국립대학들은 적립금을 남길 수 없는 기성회계에서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 넘는 이월금을 보유하고 있다. 재정 부족을 호소하는 국립대학 입장에서는 재정회계법 도입 이후에도 장기발전을 이유로 이월금을 변칙적으로 계속 증액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재정회계법 제정의 근본 문제

 

재정회계법 제정을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법의 도입 취지에 있다. 역대 정부는 국립대학 예산지원을 줄이고 한정적인 정부예산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민간자본 확보 방안의 하나로 끊임없이 국립대학 체제 개편을 모색해 왔다.

 

서울대와 같은 법인화로 대표되는 국립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1987년 교육개혁심의회가 교육개혁종합구상에서 장기 과제로 국립대학 특수법인화국립대학특별회계제도롤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정부는 국립대학 특별회계법()(1997)’, ‘국립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법()(2002)’,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2007)’, ‘국립대학 재정·회계법()(2008)’ 등을 꾸준히 추진했다.

 

그러나 국립대학 구성원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어느 것 하나 시행되지 못했다. 다만, 2007년 울산과기대, 2010년 서울대, 2012년 인천대의 법인화 법이 제정되어 개별 대학 차원의 법인화가 진행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법원의 기성회비 판결을 계기로 재정회계법이 도입된 것이다.

 

결국 재정회계법의 목적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국립대학 재정 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제고라는 시장주의식 정책 기조에 따른 국립대학 체제 개편이 기성회비 논란을 계기로 추진된 것은 우리나라 국립대학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이제 국립대학은 시장논리에 따라 무한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재정 확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서울대와 같은 법인화를 통해 수익사업 허용을 요구하거나 부산대와 같이 대형 상업시설 등을 유치하는 대학도 나올 수 있다. 아니면 재정회계법 개정을 통해 대학회계에서도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소송 불러올 수도, 정부의 예산 지원 계획 밝혀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국공립대학 비중이 낮거나, 등록금에 의존해 국립대학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정부가 국립대학 비중을 높이거나 재정 지원을 확대해 공공성을 높이지는 못할망정 재정회계법과 같은 제도 도입을 통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세계적 망신거리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재정회계법이 3월부터 시행되는데, 국립대학 학생들은 법적 근거도 없는 2015년 기성회비를 이미 납부해 버렸다. 물론 재정회계법 부칙에 ‘20151월 및 2월에 수입되는 2015학년도 수업료 등은 2015학년도 대학회계의 세입으로 한다.(2, 수업료등에 관한 특례)’고 특례규정을 두었다. ‘수업료 등에 기성회비가 포함된다는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법원에서 불법이라고 판결한 기성회비를 수업료 등이라는 편법으로 징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소송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재정회계법이 제정되었다고 정부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재정회계법 도입이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국립대학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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