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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5.11.14 조회수 :595
지난 10월 31일, 대학 관계자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단계 BK21 사업(안)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되었다. 1단계 BK21 사업이 올해 마무리되면서, 2단계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공청회에서 의견을 수렴하여 11월 사업안을 확정하고, 12월 말 사업 공고, 내년 3월 사업단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정된 사업단에는 1단계 사업비 1조 4천억 원보다 7천억 원이 증가한 2조 1천억 원이 매년 3천억 원씩 7년 간 투입된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했던 대다수 대학 관계자들은 2단계 사업계획(안)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무엇보다 교육부가 제시한 사업 참여 조건이 까다로워 지방대학 중에서는 이를 충족할 만한 대학이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참여 조건을 완화했다고 하지만, 2단계 사업 역시 서울 및 몇몇 지방 대학이 독식하게 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지방 대학들이 참여 조건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BK21 사업이 다른 어떤 사업보다 재정 규모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업단 선정이 향후 지방 대학 존폐를 좌우할 수도 있는 탓이다. 국립대와 국립대병원 지원비를 제외한 고등교육 예산 중에서 BK21 사업을 포함한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여 2004년에는 52.3%나 된다. 문제는 BK21, NURI, 대학특성화사업 등 사업은 여러 가지이지만, 지원은 사업 성격과 무관하게 일부 대학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94~04년 지원된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50%를 서울대를 포함한 상위 10개가 독식했다.
더 심각한 것은 어떤 특수목적지원사업에도 선정되지 못 해 국고지원을 한 푼도 못 받은 대학들이 63개교(전체 대학의 31%)에 이른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부실대학의 퇴출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없다는 것은 재정난의 가중을 뜻하는 것이며, 또한 부실 대학으로 판정되어 퇴출될 수도 있는 위기 그 자체인 것이다.
교육부의 주장대로 고급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십분 인정한다하더라도 고급인력 양성이 대다수 지방대학이 배제된 채 몇몇 대학에 의해 독점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별 대학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여 오히려 전체 대학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경쟁에서 밀려난 다수 지방대학의 몰락을 불러올 수 있다. 이미 지난 몇 년간 정부의 정원 정책 실패와 차별지원으로 지방대학은 사멸직전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2단계 BK21 사업은 2만 명 이상의 석·박사급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하지만 1차 BK21사업을 통해 양성된 연구인력도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적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사후연구원·계약교수 등 BK21사업에 참여한 신진연구인력의 64%가 계속 대학의 연구인력으로 남아있다.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지원도 1단계보다 확대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전체 지원비 중 14%로 여전히 저조한 편이다. 또한 참여 조건으로 산학협력단 구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산학협력단은 조급한 추진 과정에서 법령 및 제도 미비로 운영상 혼란과 차질을 빚고 있다. 2단계 사업에서 신설된 고급전문서비스 분야도 의·치학전문대학으로 대학을 강제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란 비난이 일고 있다.
이렇듯 2단계 BK21 사업은 1단계 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BK21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하지 않는 것은 미국식 대학 제도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BK21 사업은 미국의 연구중심대학 제도를 그대로 모방, 이식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분별한 모방으로 인한 문제점을 이식 과정의 마찰과 부작용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개방화시대에서 자칫 우리 대학이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사이, 외국 대학에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내맡길 수 있음에도 말이다.
교육부는 공청회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하겠다고 했다. 공청회가 현장의 참여를 배제한 요식 행위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러한 문제 제기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으로 차별을 심화시킬 것이 아니라 전체 대학을 발전시킬 비전과 계획을 내와야 한다. 중소규모 대학과 지역대학은 참여조건 완화와 예산 안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나라 대학의 생존 능력마저 말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