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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5.04.25 조회수 :457
정부가 경제특구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입학이 가능토록 외국의 개방 사례를 허위 보고했다는 의혹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지난 4월 3일부터 5일까지 국회 교육위 의원들이 싱가포르와 상하이 외국인학교를 시찰하고 온 이후 붉어졌다. 싱가포르 등지에서는 내국인의 외국학교 입학이 수월하다는 시찰 전 정부의 브리핑과 달리, 싱가포르와 상하이 모두 내국인의 입학을 허용하는 외국인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구내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을 50%까지 허용하려던 교육부 계획은 여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국인학교를 설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설명대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서비스 제공일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이라면 국공립 차원에서 외국인학교를 설립할 수도 있다. 문제는 외국과 달리 우리 정부가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는 데 있다. 이는 외국인학교를 통한 교육개방과 다를 바 없다.
지난 22일, 교육위에서 마련한 ‘외국교육기관 특별법 공청회’에 참석한 영국 노드앵글리아 에듀케이션그룹의 이건범 이사는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입학을 10%로 제한하면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노드앵글리아 그룹은 상하이를 비롯한 13개 국에 외국인학교를 건립·운영하고 있는 국제적 교육자본으로, 현재 인천경제청과 2007년까지 2천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이 노드앵글리아 그룹이 상하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내국인 입학 제한에만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위의 사실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경제특구내 교육개방은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교육서비스의 제공 차원보다 외국교육자본의 투자와 이윤창출을 더 많이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교육개방을 종용하는 것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하에 당장의 단기 투기자본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잃고 우리나라 교육을 팔아 넘기려는 것이거나, 쌀개방 과정에서 보았듯이 허술한 협상력으로 상대국의 개방압력에 무릎 꿇어버렸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뼈 속까지 사대주의에 물들어 교육개방만을 맹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은 해외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제도로, 이 제도의 도입으로 파생될 문제점이 무엇인지부터 심사숙고하여 따져보아야 한다. 이미 지적되고 있듯이 교육개방은 다국적 교육기업의 잇속만 챙겨준 채, 외국인학교의 귀족교육화, 사교육비의 폭등, 교육의 주체성 상실 등 우리 공교육의 골간만 뒤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극히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청회에 참석했던 현 대전국제학교(외국인학교) 교장 조나단 팬런드 조차도 "경제특구에서도 이윤은 다른 부분에서 내고 학교는 이윤의 압력을 받지 않은 비영리 법인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초중등교육보다 개방이 많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고등교육도 전 세계적으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일 뿐이다. 2002년 유럽 지역의 문화·교육 장관들은 브리셀 선언서를 만장일치로 채택, 교육·문화 개방을 반대하고 있으며, 남미지역 역시 국립대가 주를 이뤄 개방의 여파가 적다. 일본은 일찍 고등교육을 개방했으나 외국교육기관에 정식학위를 부여하지 않아 영향이 거의 없었다. 중국과 싱가포르의 예를 많이 들고 있으나 이번 외국인학교의 사례처럼 전체를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부분적이고 일방적이다.
올해는 경제특구내의 외국교육기관 설립뿐만 아니라 WTO 교육개방 2차 양허안 제출 일정도 잡혀있다. 2003년 3월, 1차 양허안을 제출할 당시에는 참여정부의 출범이 얼마 되지 않았고, 교육주체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가 극심해 현 개방 수준을 유지하는 선에서 양허안을 제출했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경제지상주의적, 사대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않고 개방 만능주의에 빠져있다면, WTO에서 어느 나라보다 불리한 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검증 안 된 시스템의 도입으로 교육개방의 실험장이 되기보단 누차 지적되고 있는 교육개방의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 교육과정을 통틀어 교육개방은 다시 원점에서 재고되어야 하며, 경제특구내 외국교육기관 설립과 관련한 법안은 충분한 검토 뒤에 통과시켜도 늦지 않다. 참여정부라고 하지만 교육개방 관련한 공청회는 겨우 두 번뿐이었다고 한다. 언어와 정보의 장벽에 막혀 있는 국민들에게 왜곡 없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대책 마련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수렴과 참여를 보장하고, 협상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특히, 교육부는 재경부의 일방적 경제논리에 끌려다니기보다 우리 교육을 보호·육성할 수 있는 분명한 입장과 태도로 교육개방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국회 교육위는 교육 개방의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무분별한 교육개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법안 심사와 행정 감사를 철저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