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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4.06.28 조회수 :689
지난 1월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이하 누리사업) 계획`이 공고된 지 5개월여 만에, 이 사업에 참여할 대학이 선정·발표되었다.
향후 5년간 총 1조4천2백억원이 지원되는 이 사업은 올해에만 2천135억원이 지원된다. 대형 사업단(30억~50억원) 25개, 중형 사업단(10~30억원) 25개, 소형 사업단(10억원 이하) 61개로 총 111개 사업단이 선정됐다. 권역별 지원액은 대구·경북 4백12억, 광주·전남 3백25억, 부산 2백52억, 충남 2백14억, 전북 1백73억 등이다.
선정 결과를 보면, 부산지역의 동서대나 충남지역의 호서대, 대전지역 한밭대 등이 기존의 지역거점대학을 제치고 대형과제에서 선정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지만, 대부분 기존의 지방거점대학들이 사업단으로 선정되었다. 사업단에 선정된 79개 4년제 대학 중에서 실질적 수혜 대학이라 할 수 있는 25개 대형 사업의 중심대학은 국립대가 18개 대이고 사립대는 8개 대에 불과하다.
사립대학이라 하더라도 포항공대, 영남대, 조선대 등 지역에서 거점 역할을 했던 대학이 대부분으로 지역별 상위 대학들이 누리 사업도 독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대형사업단 필수 참여 조건으로 지자체와 산업체가 반드시 결합하도록 했는데 이 같은 조건에서 지역의 거점대학이 선정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누리 사업 전체 예산의 50%가 대형사업에 배정되어 있어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재원은 집중될 수밖에 없고, 사업단 선정에서 탈락한 대다수의 군소규모·비대도시권 대학들은 정부의 일반지원사업 마저 완전 폐지되어 더더욱 재정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정부 지원 창구가 완전히 폐쇄된 대학들은 아사 직전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번 사업으로 정원 감축과 구조개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교육부 관계자의 말처럼, 일부 대학의 강제 퇴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사업단 선정에 있어 대학간 불균형뿐만 아니라 학문간 불균형 문제도 심각하다. 교육부 말대로 모든 학문 분야에서 사업단을 신청할 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선정된 사업단은 이공계 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총 111개 사업단 중 인문사회계열 사업단은 대형 1개, 중형 8개, 소형 20개에 불과하며, 2004년 총 지원액 2,135억원 중 19%인 403억원 만이 인문사업계열 사업단에 지원된다.
지자체나 산업체는 ‘돈’ 되는 이공계열 쪽 사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산학협력의 필요성을 일부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번 사업 결과처럼 인문사회계열을 도외시한 채 산학협력이 강화될 경우 대학은 기업이 요구하는 기능 인력만을 양성하게 됨으로써 비판의식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판단력을 지닌 인재를 키워야 할 대학 본연의 역할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인문사회계열이나 기초학문 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대학 발전 역시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 외에도 교육부가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졸속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사업단 선정에서 탈락한 대학을 중심으로 공정성 시비마저 일고 있는 실정이다. 1월 사업 공고 이후, 2월 사업설명회, 4월 사업계획서 접수, 1~2 개월만의 평가로 사업단을 확정했다.
이러한 초고속의 사업 진행으로 대학과 함께 지역산업체·연구소·지자체·NGO·지역언론 등 수많은 단체와의 협력 하에 꾸려진 사업단을 평가하고, 수 십 년을 내다봐야 하는 지역 사업을 선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사업단이 결정되기 이전부터, 누리사업이 BK21과 거의 같은 양태로 추진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이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대규모 지방대학들을 중심으로 지원금 나눠먹기식 사업이 될 것이며, 대다수 정부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규모 비대도시권 지방대학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 생산의 기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지역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담아낼 학문과 문화를 사장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몇몇 거점 대학에 재원을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지방대학의 위기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새롭게 원 구성을 하게될 17대 국회에서는 누리사업을 비롯한 선별지원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며, 폐지된 일반지원사업을 확대·재편하여 누리사업에서 제외된 대학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대학구조조정 계획을 중단하고, 대학마다의 상황과 조건에 맞는 평가와 인센티브로 특성화를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