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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4.02.23 조회수 :402
최근 일부에서, 매년 반복되고 있는 등록금 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학교당국, 교수, 학생이 모여 합리적인 등록금 인상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오가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등록금 투쟁을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의 논의는 일면 바람직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 마련에 앞서 주의 깊게 생각해 봐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인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국가교육재정의 부족 때문이다. 03년 정부교육예산 대비 고등교육예산은 11.1%에 불과하며, 02년 사립대학 수입총액 대비 국고보조금 비율도 3.4%에 불과하다. 국가교육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등록금에만 의존하여 대학을 운영하니 등록금은 계속 인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국립대보다 사립대가 많은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우리나라는 기형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수익자부담의 논리’를 펴, 학생들이 교육비를 담당해야 한다고 하지만, 교육의 최종 수혜자가 국가와 사회 전체라는 점에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는 OECD국가의 대학 지원 예산을 비교해 보아도 쉽게 증명된다.
대학재정을 책임져야 할 사학법인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전국 사립대학 수입총액 대비 법인전입금 비율이 4.8%에 불과하며, 그것도 최근 몇 년간 감소 추세다. 사학법인들은 재정 확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비합리적 근거를 내세워 등록금만 인상하려 하고 있다. 불합리한 예산편성으로 매년 수천억원의 결산차액을 남겨 이월적립금을 쌓아가고 있으면서도, 사학들은 제대로 정보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학은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처지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등록금 인상을 관례처럼 여기고 있다. 사학의 이런 태도로는 대화와 타협이 애초부터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와 대안 마련 없이 등록금 인상에 관한 합의기구가 추진될 경우, 대학 교육비 부담 주체에 대한 주객전도 현상과 같은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국가교육재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으며, 사학법인 역시 자신들의 재정 확충 노력은 없이 모든 책임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상황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자는 것은 글자 그대로 등록금 인상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오히려 학생과 학부모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설사 ‘합의 기구’가 설립된다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등록금은 ‘학교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규칙’ 제2조에 의거 국·사립을 막론하고 학교 자율로 결정하게 되어 있다. 정부는 등록금 인상과 관련해 권고는 할 수 있지만, 결정권은 없다. 논의기구에서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사학이 이 결정을 따를지 의문이다. 재정난을 계속 호소해 왔고, 국고보조금을 늘리지 못한다면 자율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학들은 기부금입학제도 같은 논리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안이다.
만약,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사회적 합의 기구’가 그대로 추진된다면 등록금 인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역설적으로 등록금 인상을 부추기는 결과를 내올 수도 있다. 따라서 논의기구 설치보다 국가교육재정 확충, 올해부터 폐지하겠다는 국고 일반지원사업비 계속 유지, 법인전입금 확충, 합리적 등록금 인상 근거 제시 및 자료 공개 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리적 등록금 인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