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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실종, 허울뿐인 경쟁력 강화 방안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11.24 조회수 :482

지난 22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통령 및 대학 총·학장, 산업계 및 정부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스스로 “대학의 자율과 교육·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혁신 방안”이라고 평했지만, 어디에서도 개혁성과 참신성을 찾아볼 수 없어, 어떻게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탄식만 나올 뿐이다.

 

“2만불 시대 도약을 위한 인적자원개발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수립되었다는 이번 방안은 참여정부의 대학경쟁력 강화의 방향과 목표가 무엇인지 쉽게 짐작케 한다. 개발독재시대의 수출 달성 목표를 연상시키는 “2만불 시대”를 열기 위해 대학의 모든 교육과 연구가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을 연구중심, 교육중심, 직업기술교육중심으로 분업화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이 요구하는 데로 대학을 재편할 수 있도록 기업만족도 평가, 산업체와 계약에 의한 학과·학부 설치, 교육과정 개발에 산업체 인사의 참여 제도화, 학교기업 설립 운영을 활성화하고, “2만불” 획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대학은 국고 지원도 없애고 퇴출시켜 버리겠다고 한다.

 

대학경쟁력이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유효성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님에도 대학을 경제지상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대학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것이다. 대학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적 인재를 양성하고, 이론 및 기술의 창조·재생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전망을 제시하고, 사회발전을 추동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학이 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때 그 사회 발전도 담보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 원리에 대학을 내맡긴다면, 대학은 일개 제품생산공장의 부설연구소나 단순기술인력을 양성 학원으로 전락케 될 것이며, 우리 사회의 발전적 미래 또한 없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방향과 목표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개혁’의 실체가 온데 간데 없어졌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요구와 목소리는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이번 방안들은 대부분 김영삼 정권의 5.31 교육개혁안부터 지난 정권까지 추진되어 온 것들을 보다 구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정권까지의 교육정책을 평가했다면, 적어도 인수위의 교육분야 보고 내용을 담고자 하였다면, 이같은 방안들을 내오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8월 로드맵 발표 이후, 참여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높았던 만큼 적어도 그 때 이를 수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다.

 

BK21은 초기부터 수많은 비판과 우려를 낳았으며, 진행 과정에서도 연일 잡음과 분란이 끊이지 않았던 사업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업종료를 앞둔 시점에서 철저한 평가를 대비하는 것이 선차적 과제일 터이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벌써부터 post-BK21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학부제의 철회를 요구해 왔던 대학들은 정부 지원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학부제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고,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학청산시 법인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개정이 논의되고 있으며, 국고지원사업은 일반지원사업의 확대를 요구했던 현장의 목소리와는 딴판으로 완전히 폐기될 상황에 놓여있다.

 

이처럼 교육현장의 개혁 요구를 완전히 무시한 방안들이 어찌 ‘참여’ 정부의 교육개혁안이 될 수 있는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대학 개혁은 전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할뿐만 아니라 개혁의 주체 또한 전국민이어야 한다. 그 기본은 국민의 목소리를, 교육현장의 요구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은 국민의 ‘참여’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참여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교육인적자원부가 독선적으로 교육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우리 대학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일부는 생존의 길을 갈 수 있겠지만, 대다수 대학들은 교육개방의 여파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대학의 교육과정, 재정운영, 학과 개설권 등이 기업에 넘어가 대학의 자율성은 극도로 침해당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단순 실무 교육만을 받게될 것이며, 연구중심대학이나 외국 대학을 나온 일부만이 부를 독점하여 지금보다 심각한 교육열과 사교육비의 증가, 국부의 유출 등을 가져올 것이다. 이 속에서 참여정부의 지방대학 육성을 통한 지역 발전, 국가균형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스럽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아직 국민의 열망을 담아 교육개혁을 마련할 시간은 충분하다. “2만불 시대”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냉정한 평가와 함께 국민들의 교육개혁의 요구를 귀담아 들어 진정 국민들을 교육개혁의 주체로 참여시킬 수 있는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이 대로 교육개혁이 추진된다면, 참여정부는 또 다시 국민들의 맹렬한 비난과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400여명의 각계 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박수치고 끝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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