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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3.08.04 조회수 :563
무엇을 위한 대학평가인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에서 실시해온 대학평가가 교수들의 공개적인 집단거부에 직면하였다. 대교협은 올해 6월부터 학문분야별 평가의 일환으로 경제학과, 문헌정보학과, 물리학과를 평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해당학과의 전국교수들이 평가편람 내용과 준비기간, 결과 발표 방식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평가의 무기한 연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문헌정보학과의 경우 31개교 모두가 평가거부를 선언했고, 97개 경제학과 중 92개, 77개 물리학과 중 70개가 평가거부를 위한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소속학교의 소외와 탈락을 우려한 일부 대학의 불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교수들이 대학평가를 거부한 이유는 평가대상기관의 의견수렴없는 일방적 평가기준, 방대한 양의 평가자료 요구에 따른 학사업무 지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핵심적 이유는 대교협의 대학평가가 각 대학의 처지와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기준을 통해 대학 및 학과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입시학원 대학순위표를 써라’는 교수들의 토로는 대교협이 내세운 ‘평가를 통한 대학의 경쟁력 향상 제고’라는 대학평가의 취지와 대학현장에서 느끼는 대학평가 실상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예전 같으면 조금이라도 평가를 잘 받기위해 학생, 조교 모두 총동원하여 평가준비에 나섰을 교수들이 이처럼 집단거부를 선언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문대학을 포함하여 전체 대학진학희망자가 대학졸업예정자보다 많은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실제 정원미달 사태를 겪는 대학수가 늘어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졌으며, 이에 따라 긴축재정, 학과 통·폐합, 대학간 통·폐합 등 대학구조조정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평가대상인 경제학과, 문헌정보학과, 물리학과는 비인기학과에 해당하는 기초학문 계열로, 이번 평가에서 낙제점수를 받을 경우 폐과 대상 1순위가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소속 교수들에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전체 대학평가와 달리 평가결과 공개가 한층 강화된 학과별 평가는 위기의식을 불러 결국 집단적 거부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평가를 종료해야 한다며 밀어붙이는 대교협의 모습을 보면, 대학평가를 통한 학과 및 대학의 퇴출 유도는 오히려 대교협이 의도한 바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지난 1994년부터 실시된 대교협의 대학평가는 김영삼정부 이래로 유지되어온 ‘선택과 집중’정책에 따른 행·재정적 차등지원의 판단기준이 되어왔다. 역대 정부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BK21, 공과대학 중점육성사업, 교육개혁추진우수대학선정사업, 지방대 특성화사업 등 행·재정적 차등지원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대학간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극대화되어 수도권에 위치한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대학특성화와 교육의 질적 발전은 점점 요원해지고, 일찌감치 교육과 연구의 질로 승부할 것을 포기한 대다수 대학들은 신입생유치를 위한 홍보와 외형확장에 학생등록금까지 쏟아 부으며 열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가 결과 후순위를 차지할 것이 뻔하다고 판단한 일부 사립대학들은 대학 설립시 출연금을 돌려 받고 대학을 청산할 궁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결과적으로 대학구성원들만 피해를 보게될 판이다.
노무현정부는 이번 대교협 평가에 대한 교수들의 집단거부를 단순히 일부 평가항목의 수정으로 무마하려해서는 안된다. 최근 들어 계속된 지방대 총·학장 협의회의 지방대육성 촉구, 국·공립대 총장들의 학부제 반대, 그리고 이번 대교협 평가거부는 결국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선택과 집중’정책이 낳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이다.
따라서 노무현정부는 역대 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하여 차별정책을 철회하고, 화합과 통합의 원리로 대학정책을 전면 수정해야한다. 대학평가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학문과 대학을 줄을 세워 퇴출을 유도하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지원과 육성을 위한 평가가 되어야하며, 대학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은 걸림돌을 찾아내 개선하는 방향이 되어야한다.
2003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