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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24.09.02 조회수 :645
지난 20일 경향신문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에서 대학 고교평준화 폐지, 수능 이원화, 등록금 자율화 등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국교위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가 2026년 이후 10년의 교육정책 방향을 담는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 중인데, 대학 등록금 관련해서 ‘5년간 법정 한도 내 인상 → 이후 5년 차등 등록금 인상 → 완전 자율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국교위 등록금 자율화 논의?
최근 급격한 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줄면서 재정난을 겪게 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등록금 인상 요구가 크다. 하지만 대학이나 언론 등에서 등록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과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등록금 자율화를 논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등록금 자율화는 현재의 등록금 상한제조차 폐지하고, 등록금 결정 권한을 사립대학에 다시 넘기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교위는 바로 설명자료를 내 보도 내용은 전문위원회 차원에서 논의된 사항이지 본회의에 보고되거나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발표했다.
등록금 자율화의 문제점은 등록금 상한제와 등록금 동결 조치가 시행되기 전 상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2010년 시작된 등록금 상한제와 2012년 등록금 동결 조치 배경에는 당시 물가상승률의 2~3배 넘게 폭등하던 고액 등록금 문제가 있었다. 1989년 등록금 자율화 조치로 등록금 결정 권한을 사립대학에 넘긴 결과였다. 사립대학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대학교육비 부담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겼고, 등록금은 폭등했다. 당시 사립대학 수입 중 등록금 비중이 70%에 육박했고, 90% 이상인 대학도 적지 않았다. 사립대학 재정을 대부분 등록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대학교육비 증가가 고스란히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의 등록금 동결은 왜 시작됐는가
사립대학의 무분별한 등록금 인상으로 우리나라 국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야 했고,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학생과 학부모는 ‘반값 등록금’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권이 나서서 적극 도입한 제도가 등록금 상한제이고, 이후 정부는 등록금 동결 조치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 실린 등록금 자율화를 주장한 칼럼을 보면, 나라 장래가 첨단 미래 산업 인재 확보에 달렸는데, 등록금 동결이 계속되고 벌충할 정부의 지원도 없다면 첨단산업 인재 양성은 불가능하다며 등록금 자율화를 주장한다.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부족해져 교육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며, 등록금을 인상해 대학발전을 꾀해야 하고, 등록금은 대학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대학 재정 부족을 등록금을 인상해 해결하자는 것이며,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데 제한이 없도록 자율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첨단 산업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을 발전시키려면 많은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나 대학의 미래가 달린 일을 민간 자금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재정적 부담을 늘려 해결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언제까지 학생과 학부모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와 대학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당연시하는 발상을 이어가려는 것인가.
우리는 불과 10여년 전, 폭등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등록금 부담을 줄여달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경험이 있다. 10년 이상 이어진 등록금 동결 조치로 학생과 학부모의 대학교육비 부담은 어느 정도 줄었다. 하지만 2022년 일반대학 수입의 절반 이상(51.2%)은 여전히 등록금이다. 반면, 사립대학 운영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학교법인이 대학에 지원하는 법인전입금은 고작 3.7%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고보조금은 국가장학금이 증가하면서 18.4% 정도다. 아직도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교육비를 가장 많이 부담하는 게 현실이다.
2023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2020년도 우리나라 고등교육 민간부담 공교육비 비율은 57%인데 반해, OECD 평균은 30%다. 우리나라가 거의 두 배 높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6년 62%보다 낮아졌다. 국고보조금 확대로 정부 부담 공교육비 비율이 높아진 결과다. OECD 가입국답게, 대학교육을 정부 재원 위주로 개선해 나감으로써 국민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고 실질적인 공교육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사학 운영자 책임보다 규제 완화 확대한 윤석열정부
국교위에서 ‘등록금 자율화’가 거론된 것이나 언론 등을 통해 등록금 자율화 주장이 이어지는 데에는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규제 완화’는 윤석열정부 고등교육 정책의 핵심 기조로, 등록금 동결 조치나 등록금 상한제를 사립대학의 자율적 재정 운영을 가로막는, 철폐해야 할 규제로 보는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규제 완화는 사학운영자 요구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 유휴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용도 변경 시 허가기준 완화,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 기준 완화, 확보 기준을 초과하는 수익용 기본재산 처분금에 대한 용도 확대 등이 대표적 조치다. 사학운영자들이 사립대학 재산을 쉽게 처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등록금 자율화 조치도 사학운영자들의 강력한 요구 사향임은 분명하다. 반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22년 법인전입금 비율이 3.7%에 불과함에도 학교법인의 재정적 책임을 강제하거나 견인하려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등록금 폭등으로 사립대학에 재정적 여유가 있을 때, 사립대학들은 과도한 적립금 축적,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재정 비리, 폐쇄적이고 비민주적 대학 운영 등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사립대학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등록금 인상보다 재정적 책임을 다하려는 학교법인의 태도 개선과 노력이 우선이다.
등록금 인상 아닌 정부와 사학 운영자 책임 강화 시급
한편, 등록금 자율화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학생 수 감소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등록금 인상 요구가 크다. 학벌주의나 지역 차별‧소외 등으로 수도권대학보다 학생 충원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의 등록금 인상 요구를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재정 부족을 얼마나, 언제까지 등록금으로 충당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24년 47만 명인 학령인구 수는 2040년대에는 20만 명대로 또 다시 급감한다. 학생 수가 반토막 나는 것인데, 이를 보존하려면 등록금을 지금의 두 배 이상 인상해도 부족할 판이다.
따라서 학생 수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난에 대한 정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재정 지원 확대는 기본이며, 사립대학에 대한 경상비 지원 허용도 고려해볼 사항이다. 정원 정책 및 구조조정 방안도 함께 마련되어야 할 부분이다.
국교위는 내년 3월까지 국가교육발전계ᅙᅬᆨ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등록금 관련 방안이 담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과 같은 폐쇄적 논의 속에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록금 자율화 방안을 내놓는 일은 없어야 겠다. 대학교육을 학생과 학부모의 재정적 부담으로 운영하려는 ‘수익자 부담’ 논리는 지양하고, 정부와 학교법인 재정적 부담 확대를 기본으로 한 국가교육발전계획이 논의되길 바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의견수렴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