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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대학 영어강의 당장 중단되어야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10.03.08 조회수 :646

몇 년 전부터 대학에 영어 강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모든 대학이 세계화·국제화를 외치면서 너도 나도 영어 강의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던 중 포항공대가 전면적인 ‘영어 공용화 캠퍼스’로의 전환을 들고 나왔다.

 

포항공대, 대학 내에서는 영어만?

 

포항공대는 2일 신입생 입학식과 함께 영어공용화 캠퍼스를 공식 선언했다. 포항공대 총장은 ‘홍콩과기대의 급성장에는 영어 사용이 큰 역할을 했고, 외국 학생과 교수들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배경을 밝혔다. 포항공대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강의(기초과목은 3년 내), 논문, 세미나(외국인이 참석한 경우), 전체 교수회의, 게시물 및 행정문서(국영 혼용), 홈페이지(필요한 경우 한글 첨부), 대학규정 등을 국어대신 영어로 바꾸고, 적용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3년 안에 `영어 공용화 캠퍼스`를 완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포항공대의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주요대학으로서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포항공대가 밝힌 추진 배경에 설득력이 전혀 없다.

 

사실관계까지 왜곡한 포항공대 영어 사용 이유

 

대학이 급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홍콩과기대는 예산의 대부분을 정부에서 지원 받고, 교수 연봉과 복지혜택, 교수 1인당 학생 수, 학생 장학금도 포항공대와는 비교가 안된다. 물론 홍콩과기대 예산 규모가 포항공대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홍콩은 155년간의 영국 식민지배 영향으로 광동어와 함께 영어도 자연스런 언어가 되었다. 따라서 포항공대 총장이 말한 영어 사용이 홍콩과기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우선적인 척도가 될 수 없다. 또한 포항공대가 외국 교수와 학생이 안 오는 것이 영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의사소통 문제가 있겠지만 이것 때문에 외국인이 안 오는 것일까. 영어 사용을 우리보다 훨씬 덜 하는 일본의 주요 대학에 외국인이 많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전 세계에서 자기 언어를 포기한 채 대학에서 영어를 사용해 국제경쟁력을 키운 대학이나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영어 공용화는 득보다 실 커

 

물론 포항공대 총장의 주장처럼 대학 내에서 영어를 사용하면 얻는 이익이 분명 있기는 할 것이다. 학생들이 영미권 연구결과나 원서를 직접 습득하고, 그들과 교류함으로써 학문적 성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국 대학으로 번져가고 있는 영어강의는 몇 안 되는 장점보다 단점이 너무나 많다.

 

첫째, 학생들 입장에서 학습 능력의 문제다. 영어가 일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전공과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보다 영어 의미 해석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학 4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완벽한 영어 의미 해석을 바탕으로 한 전공 내용 이해가 가능할까. 이를 해결하려면 학생들은 영어 사교육에 막대한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교수들의 표현력 문제이다. 우리나라 교수들 가운데 미국 학위 소지자가 많다고 해도 한국적 사고를 영어로 얼마나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교수들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내용은 얼마나 질이 높을까. 또한 많은 대학에서 영어 강의 시행 목적을 외국 교수와 학생들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라는데, 특히 외국 학생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할 수 있는 교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셋째, 대학 경쟁력 문제이다. 많은 대학 당국자들이 영어를 사용해야 대학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 강조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 사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대학에서는 영어를 우리나라처럼 죽자 사자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경쟁력 지표의 핵심이라 할 노벨상을 16명이나 수상했다. 이 가운데 2008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토산업대 교수는 여권도 없을뿐더러 스스로 "영어가 정말 서툴다."고 말한다. 또 언론과 기자회견에서 "영어로 된 물리 용어는 안다. 그러나 영어로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물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넷째, 미국에 대한 학문적 종속 심화이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 가운데 외국박사학위 소지자의 2/3가 미국 학위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에서 영어 강의만 하게 된다면, 미국에 대한 학문적 종속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아울러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학문의 다양성은 말살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효율성 문제이다. 강의만을 영어로 하는 다른 대학들과 달리 포항공대는 교수회의나 게시물, 공문서까지도 영어로 하거나 국영 혼용을 하겠다고 밝혔다. 회의나 공문서 작성 의미의 핵심은 무엇인가?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행이다. 우리말 대신 영어로 쓰면 효율성이 더 높아질까. 또한 포항공대 공문서 가운데 외국인 대상의 공문서가 얼마나 될까. 필요하다면 전문가를 고용해 쓰면 된다.

 

언어는 국가와 민족 정체성의 핵심 요소

 

언어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은 "남의 식민지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말을 지키고 있으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국가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은 당연히 우리 언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열병같이 번지고 있는 대학 영어강의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반드시 영어가 필요하다면 해당되는 교수와 학생만 하면 된다. 물론 포항공대처럼 이공계 특수목적대학으로 영어 사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영어공용화 방침은 너무 나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강의보다 중요한 것이 대학의 기본적인 교육 및 연구여건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갖는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생산 토대와 방식으로 교육 및 연구의 질을 높인다면 외국 교수와 학생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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