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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대학 책임회피 부추길 ‘퇴출’ 정책 중단돼야

작성자 : 대학교육연구소 작성일 : 2009.07.22 조회수 :406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산하 대학선진화위원회는 지난 6월 24일, ‘대학의 재정상태와 교육여건을 진단하고, 회생이 불가능한 대학에 대해 퇴출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등록금의존율, 재학생충원율, 등록금수입에서 교직원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 등 5개의 재무지표와 신입생충원율, 교육비환원율, 학생취업률 등 6개의 교육지표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대학퇴출’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유는 신입생 미충원이 심각한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수 감소에 따른 재정난을 해소하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위 ‘부실대학’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퇴출 정책을 논하기에 앞서 오늘날 대학이 양적으로 팽창하게 된 근본원인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부실대학 양산의 일차적 책임은 ‘대학설립 준칙주의’

 

정부는 대학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대학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는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했다. 1996년 도입 이후 2008년까지 일반대 37교, 전문대 17교, 대학원대학 34교 등 총 88교가 설립되었다. 이들 중 일반대 28교, 전문대 11교가 지난해 신입생 충원율 미달 대학이다. 심지어 이들 대학 중 일부는 설립 당시 최소한의 조건도 제대로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준칙주의 대학의 대표적인 폐해는 2003년에 설립되어 6년 만에 폐교된 아시아대이다. 아시아대는 설립 당시 허위 재산출연증서를 제출해 인가를 받았고, 교수 채용 과정에서 금품을 받는 등 대학 운영에 심각한 부정비리가 밝혀져 올해 2월 폐교됐다. 폐교 이후 다른 대학으로 이직한 교수는 단 한명도 없으며, 재학생 170여명 중 40여명만 인근 대학으로 편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도 있겠지만 부실하게 설립된 대학이 어떻게 운영 될 수 있는지, 폐교된 대학의 구성원들이 입게 될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처럼 정부는 부실대학 양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대학퇴출을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대학설립 준칙 제정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여 준칙주의 정책 도입에 앞장섰으며, 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완 교수는 ‘531 교육개혁안’을 입안한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이었다. 준칙주가 5.31교육개혁안의 주요 정책임을 감안한다면, 이들이 대학퇴출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과거 정책실패를 묵인함으로써 또 다른 정책실패를 불러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퇴출정책의 문제점

 

대학퇴출은 우리대학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우선 선진화위원회가 경영부실 대학을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신입생 충원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교졸업생 감소로 대학이 정원을 다 못 채우면서 퇴출이 처음 거론되었고,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사학 현실에서 미충원은 재정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충원이 심각한 대학들은 대부분 지방의 군소규모 대학들이다. 이들 대학에 퇴출을 유도하는 것은 지자체-대학-산업체로 연계되는 지역발전 정책을 어렵게 하고, 수도권 집중 현상을 심화시켜 국가균형발전을 역행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편 정부는 자발적 해산을 촉진하기 위해 잔여재산을 공익법인과 사회복지법인으로 출연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서 참여정부에서도 퇴출정책을 추진했지만, 사학운영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없어 결과가 부진했던 것을 감안하면 ‘공익법인으로의 출연 허용’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공익법인은 형식상 ‘공익적 성격’일 뿐 학교법인보다 감시체계가 더욱 허술해 사학운영자들의 사유자산으로 운용될 소지가 크다.

 

이는 자칫 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하다가 정원미달이 심각해지면 대학을 폐교하고 잔여재산을 돌려받으려는 무책임한 사학운영자를 양산시킬 수 있다. 이럴 경우 퇴출은 부실운영을 한 사학운영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혜가 될 수 있다.

 

퇴출정책, 대학의 영리화를 위한 사전포석

 

이미 현행법상 교과부는 사립대학에 대한 강제해산 명령권을 갖고 있고, 광주예술대와 아시아대에 대해 폐교 조치를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학 퇴출을 추진하는 속내는 ‘대학 영리화’를 위한 사전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비영리 학교법인이 아니더라도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하고, 외국대학들이 국내에 진입해 설립과 퇴출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화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학진흥재단, 삼일회계법인, 법무법인 태평양 모두 원활한 대학퇴출의 제도화를 제안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대학의 영리화를 제안하고 있다. 정부가 외국대학 설립을 유인하기 위해 추진 중인 ‘해외송금허용’도 국내대학에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켜 국내대학의 영리화를 실현시킬 가능성이 크다.

 

사학퇴출 정책 중단돼야

 

대학 퇴출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 사학퇴출과 관련해서는 신중한 논의가 전제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학벌주의에 따른 수도권 대학 과밀 현상을 그대로 두고 퇴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맞는지,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을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하는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고교 졸업생 진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높은 대학 진학률을 국가경쟁력 강화와 연결시키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가 범국가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논의가 없이 교과부가 사학퇴출을 밀어붙일 경우 심각한 사회적 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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